“우리가 만든 걸로 승부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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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5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시대다.”

케이블·OBS, 지상파 3사에 콘텐트 도전장

개국을 앞두고 있는 OBS 경인방송 주철환 사장은 현재 방송 시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만인은 물론 시청자다. 그들의 눈길과 마음을 뺏으려는 전쟁이 막 ‘만인’ 사이에서 불붙고 있다. 자체제작 프로그램들로 무장한 도전적인 신생 채널들이 등장하면서다. 필살기는 ‘콘텐트’다.

21세기 방송 전쟁의 화두가 콘텐트가 되리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다. 방송 시장의 규모가 해가 다르게 불어났고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플랫폼도 VOD·DMB·TV포털(하나TV·메가TV) 등으로 다원화됐다. 유통채널이 늘어나는 만큼 콘텐트 갈증은 심해졌다. 그럼에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은 지상파 프로그램을 재탕 방영하는 데 안주했다. 비용과 품이 많이 드는 자체제작보다 밖에서 사오는 게 싸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관행에 변화가 생겼다. 프로그램 구매 비용이 치솟으면서다. 콘텐트를 나를 수 있는 매체들이 경쟁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의 선점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인해 수년 내 그 비용은 더욱 오를 것이다. 케이블TV의 선호 콘텐트 중 하나인 ‘미드(미국드라마)’ ‘미쇼(미국쇼)’를 미국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국내에 공급할 수 있는 길이 트였기 때문이다. 수입 프로그램들에 목숨 걸고 있다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할 판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TV포털로 맛보기를 한 IPTV 서비스의 상용화다. TV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쌍방향 서비스를 하는 IPTV는 종전의 수동적 시청자 대신 골라보는 정보이용자 시대를 예고한다. 이에 맞서 케이블업계도 2010년까지 모든 가입 세대를 고화질(HD) 중심의 케이블 홈 네트워크로 전환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용자 입장에선 IPTV건 디지털케이블이건 입맛에 맞는 콘텐트가 많으면 그만이다. 무한히 자유로워진 채널 선택권을 싸고 한바탕 각축전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트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특히 인기가 높아 채널 인지도와 시청률을 높이고 수익도 많이 낼 수 있는 ‘킬러 콘텐트’는 핵심적이다. 월드컵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나 인기 드라마 등이 대표적이다. 지상파 3사 프로그램이 지배하는 방송 시장에서 신생 사업자들의 꿈도 이런 ‘킬러 콘텐트’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체제작 강화는 필수다.

자체제작 여건은 서서히 무르익어 왔다. 지난 5년간 지상파TV의 시청률은 꾸준히 하락했지만(2001년 39.2%→2005년 31.9%) 케이블TV는 증가일로다(2001년 4.1%→2005년 12.1%). 시청률이 오르면서 광고수입이 늘고 프로그램 판매 실적도 좋아졌다.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자체제작물이 확대되자 지상파 재방송이나 영화·외국 프로그램 방송 채널로만 인식되던 경향도 바뀌었다.

특히 논란 속에서도 개국 1년 만에 자리를 굳힌 tvN의 사례는 많은 PP들을 자극할 만하다. CJ미디어의 막강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출범한 tvN은 ‘자체 제작 편성 비율 60%’라는 도박을 벌이고도 케이블TV ‘꿈의 시청률’인 1%대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자체제작 비율을 45%로 강화하고 리모델링한 MBC 에브리원 역시 개국 15일 만에 케이블 방송 시청률 4위(평균 1.22%)에 진입하며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복병은 새로운 지상파 OBS 경인방송이다. 형식상으론 서울 지역방송사인 SBS보다 더 많은 시청자수(1400만 명)을 가진 OBS의 개국은 콘텐트 전쟁 방정식을 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지상파 3사의 아성이 굳건한 한 이들의 승부처는 기존 지상파와 차별화된 콘텐트다. 일단 MBC 에브리원과 OBS는 tvN과는 달리 ‘착한 콘텐트’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독하거나 강하지 않아도 기존 방송사들이 채우지 못한 시청자의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틈새시장을 어떻게 찾아내고 창출할 것인가. 그 성공 여하에 따라 21세기 콘텐트 전쟁의 지형도가 다시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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