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교도소 특급호텔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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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높은 돌담 너머 화강암으로 지은 건물이 고풍스럽다. 쇠창살 발코니로 실내를 꾸민 이 유서 깊은 건물은 미국 보스턴에 올해 9월 문을 연 '리버티(자유) 호텔'이다. 하루 묵는 데 최소 319달러(약 29만원), 스위트룸은 5000달러(약 450만원)나 줘야 하는 특급 호텔이다.

하지만 여느 호텔과 확연히 다르다. 창문틀마다 쇠창살을 빼낸 구멍이 뻥뻥 뚫려 있고, 레스토랑 이름은 '알리바이' '클링크(clink:유치장)' '스캄포(scampo:이탈리아어로 탈출)'다. 범죄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이 레스토랑에서 직원들은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근무한다.

185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990년까지 '찰스 스트리트 교도소'로 사용되면서 중죄인을 주로 수감해 악명을 떨쳤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주인공인 천재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 50년대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해 200만 달러를 턴 떼강도 11명, 60년대 보스턴에서 10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알버트 드살보 등이 이곳에서 복역했다.

하지만 수감자가 늘고 환경이 열악해지자 일부 재소자들이 '인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73년 폐쇄를 명령했다. 건물은 90년 매사추세츠 제너럴 병원에 매각됐으며, 다시 호텔로 팔렸다.

교도소 건물을 개조한 미국 보스턴의 리버티 호텔. 화려하게 변신한 호텔(下)에 교도소였을 당시 쇠창살 복도의 모습(上)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스턴 AP=연합뉴스]

호텔로 개조할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건축의 전범'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설계가 한몫했다. 홀을 중심으로 감방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채광을 고려해 커다란 아치형 창문을 다는 등 세련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자재도 견고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화강암을 사용했다.

개축공사에는 1억5000만 달러(약 1350억원)가 들어갔으며, 5년이 걸렸다.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교도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는 배제하는 게 개.보수의 핵심. 객실 수를 늘리기 위해 16층짜리 새 건물을 지었지만, 원래 건물에는 옛 감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린 객실 18개를 만들었다. '(고객을) 사로잡겠다(Be captivated)'는 모토를 내건 호텔의 서비스 역시 교도소 생활을 엿보게끔 구성했다. 객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싶다면 '독방(Solitary)'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내걸면 된다.

개관 이후 멕 라이언, 믹 재거, 아네트 베닝 등 스타들이 이곳을 찾았다. 고객들은 "감옥을 호텔로 개조한 것은 매우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호평했다.

특이한 것은 과거 복역자들이 찾고 있다는 점이다. 67년 한 달쯤 수감됐던 빌 베어드는 지난달 자신의 복역 40주년을 기념해 이 호텔에 묵었다. 그는 "끔찍했던 교도소가 아름답고 화려한 호텔로 변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놀라워했다.

보스턴시의 창의적인 도시 개조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심가의 경찰청 건물이 개.보수를 거쳐 '주어리스(배심원) 호텔'로 탈바꿈했다. 이 호텔 레스토랑의 이름은 '커프(cuff:수갑)'다.

한편 오래된 교도소 건물의 변신은 미국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필라델피아의 이스턴 주립 교도소와 뉴욕의 싱싱교도소는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또 일리노이주의 게일스버그에 있는 교도소 건물은 녹스 칼리지의 국제학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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