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석유를 차지한 자, 세계를 지배하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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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윌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도서출판 길,
400쪽, 1만8000원

미국의 비주류 경제학자가 국제정치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책이다. 요점은 간단하다. 20세기의 국제정세는 강대국 간의 석유 확보 다툼으로 출렁였으며 여기엔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19세기 말 석유의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대영제국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살피며 미국의 속셈은 분명한 지배권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미국의 힘은 독보적인 군사력과 세계통화로서의 달러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달러와 군사력의 위력은 석유와 얽히게 되었다 한다. 그에 따르면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일찍이 “에너지를 지배하라. 그러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석유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책에선 흥미로운 주장과 사실이 툭툭 튀어나온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영국 정보부와 관련이 있었다든가, 영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히틀러의 집권을 도왔다든가 하는 내용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석유 주도권 다툼을 벌이던 영국과 미국이 1928년 아크나카리 협정으로 손을 잡은 뒤 영미의 7대 석유회사인 ‘세븐 시스터즈’을 탄생시켜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를 독점하고 이에 도전하는 위협은 가차없이 응징했다는 내용도 실렸다. 또 50년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 마테이가 석유 개발과 확보에 독립을 추진하다 의문의 사고로 숨진 사실과, 이와 관련한 미 중앙정보국의 석연치 않은 태도도 접할 수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는 대략 2015년 에너지 고갈 사태가 올 것이며, 이라크에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많은 4320억 배럴의 미개발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미국 정부의 보고서가 있었다는 점, 이라크 점령 후에도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 등에서 부시 행정부의 의도를 알 수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책은 원제가 ‘전쟁의 세기’인데다 92년 선보여 2004년 개정한 것을 옮겼으니, 요즘 하늘 높은 줄 오르는 유가에 관한 속 시원한 설명이나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단 석유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어떻게 세계정세를 이끌었으며 우리가 어떻게 해서 어디쯤 와 있는지 아는 데는 도움이 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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