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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 중국 아킬레스건 집중공략하라!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0년 세계시장점유율 1위인 한국제품은 68개였지만 2005년에는 59개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중국이 1위를 차지한 제품은 무려 958개. 우리는 중국의 벽 앞에서 그냥 주저앉는 것일까?


세계적 브랜드 평가회사인 ‘인터브랜드’는 얼마 전 미국에서 리콜된 제품의 40%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은 저렴한 비용을 바탕으로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하도급을 도맡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인도 등이 더 낮은 비용을 무기로 들고 나오면서 중국은 이들과의 소모성 경쟁에 직면해 있다. ‘세계 최저’라던 생산단가를 더 낮춰야 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이미지가 ‘값싼 저질’이라는 오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황에 다름 아니다. 양보다 질로 승부를 건 지 꽤 오래 된 우리 기업들에는 그나마 위안이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중국 대표 기업들의 전략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해외에서 브랜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 정부도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더욱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제품을 독자 브랜드로 생산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중국 기업들이 최근 들어 브랜드 육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계적 부가가치를 지닌 브랜드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브랜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개인용 컴퓨터 업체 ‘레노버’, 맥주업체 ‘칭다오’, 가전업체 ‘하이얼’, 자동차업체 ‘체리’ 등이다.

이들은 일본 소니나 한국의 삼성처럼 자사 브랜드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저비용 저품질 제품 위주에서 벗어나 세계적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예컨대 레노버는 내년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될 올림픽의 후원업체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레노버는 2005년 IBM PC 사업부문을 인수한 후광효과로 이미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브랜드다. 레노버는 베이징올림픽 스폰서 투자를 통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최대 무기는 ‘동시다발적 고도화’

▶애플의 ‘아이팟(오른쪽)’을 흉내 낸 중국산 ‘짝퉁 아이팟’.

중국 최대 에어컨 업체인 미디어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 수영팀과 다이빙팀을 후원할 계획이다. 미디어는 미국·독일·일본을 포함한 13개국에 진출했고, 수출 제품의 80%를 자사 브랜드로 출고한다. 우리에게 낯익은 하이얼 그룹도 마찬가지. 이 회사는 도쿄·리옹·시드니 등 전 세계 8개 대도시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했다.

중국 브랜드들의 노력에 관한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이미 일본·한국 등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브랜드는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저품질 명성을 극복했는지가 중국 기업들에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디다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부사장인 크리스토프 베즈는 “앞으로 1~2개의 중국 브랜드가 전 세계 10위 브랜드 안에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의 예상이 적중한다면 곧 중국 기업들은 인근 국가에서 저변을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기업들에는 악몽이 시작되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은 몇 안 되는 세계 1등 제품조차 2위 국가와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며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 업체의 견제와 후발 주자의 추격 사이에서 ‘샌드위치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주요 무역국 81개국을 분석한 결과, 한국 제조업의 수출 고도화 수준은 1995년 14위에서 2005년 12위로 상승했지만, 중국은 29위에서 21위로 올랐다”고 밝혔다.

윤 연구위원은 “한국의 제조업 발전 과정이 ‘계단식’이라면 중국은 ‘동시다발적 고도화’”라고 덧붙였다. 조윤애 연구위원도 “중국 산업의 기술 수준은 전반적으로 한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지만 연구개발(R&D) 투자와 인력은 총량 수준에서 선진국에 접근해 있다”고 말했다.

재계 총수들이 잇달아 강조하고 나선 ‘샌드위치 위기’가 과연 엄살일까? 지금의 상황은 다급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6월 “한국이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지 못하면 부활하는 일본과 맹추격하는 중국 틈새에 끼여 도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8월 해외지역본부장회의에서 “엔화 약세와 중국 추격 등으로 글로벌 경영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가세했다.

중국의 추격을 턱밑까지 허용하게 된 데는 국내외 경기 침체와 경쟁 격화, 고유가, 원화 강세, 정부의 규제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에만 치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 섣불리 외형성장 중심의 확장경영 모드로 전환하지 못한 탓이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경영’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어적 경영이나 우물 안 개구리 식 시스템으로 일관하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좌) 삼성은 ‘희망학교’등을 통해 인도에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우) LG전자의 브라질 매장에 전시된 가전제품들.

다행스러운 점은 뒤늦게나마 국내 기업들이 해외 영토 확장과 세계 1등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글로벌 창조경영’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 것을 설파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수시로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며 글로벌 경영 시스템 정착에 주력하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도 최근 계열사 임원 세미나에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지속 가능한 1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 회장 역시 “신흥 시장에 빨리 진입하지 못하면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며 해외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두산·한화 등은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멘스나 인텔에, 현대차가 도요타나 GM에, 포스코가 미탈에 맞서 승리하려면 동서양에 걸쳐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노마드(유목민) 경영전략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한 곳에만 머무른다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다가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만큼 글로벌 사고와 세계경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신흥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LG·현대차·SK 등 주요 대기업은 기존 선진국 시장 위주 전략에서 탈피해 신흥 시장에 사내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이 4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호조세를 보이는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들 기업이 신흥 시장 개척에 과감하게 나선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LG 등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중국·러시아·인도 등에 공격적 투자를 지속해 확고한 입지를 다져가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삼성은 1990년대 후반 러시아의 외환위기 속에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볼쇼이발레단을 후원하는 등 적절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현지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 글로벌 기업들의 소극적 행태로 국내 대기업이 일부 신흥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이 이제 공격적 행보로 돌변함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안이한 저가 제품 전략이나 기존 스타일을 고수하다가는 지금까지의 공든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신흥시장 소비계층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개별 기업의 브랜드 및 제품 성격에 맞는 주도면밀한 공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기업, 신흥 시장 공략으로 대응

삼성경제연구소 남양호 수석연구원은 “각 기업은 자기 제품이 저가인지, 고가인지, 글로벌 브랜드인지, 로컬 브랜드인지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며 “삼성 사례에서 보듯 현지 사회공헌활동을 마케팅과 인지도 향상에 적극 연계해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조언 역시 M&A를 통한 대형화와 글로벌화가 정답이라는 쪽에 맞춰져 있다. 예컨대 산은경제연구소 이민식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맹추격에 노출된 철강산업과 관련해 “중국이 추진하는 통합화·대형화에 대응해 국내 철강업계도 M&A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의 전략적 제휴 같은 제한적 네트워크 구축이나 해외투자는 물론, 국내업체 혹은 해외업체 인수합병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좌) 모스크바에서 열린 ‘삼성전자 로드쇼’에 몰려든 관객들.
(우) 중국 대스플레이 업체인 BOE의 LCD 전시실.

이 연구원은 또 “중국·일본·미국에 편중된 수출지역을 다변화하고 현지 직접투자 및 합작투자 등 다양한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원료의 안정적 조달을 위해 철광석·원료탄 등에 대한 지분참여를 포함한 해외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한편, 해외 광산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기업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의 대공습이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그 동안 싸다는 이유로 메이드 인 차이나를 환영하던 전 세계 소비자들이 최근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중국산을 버리고 대체 공급처를 찾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세계 최대 공랭식 소형 가솔린 엔진 생산 기업인 ‘브릭스 앤 스태턴’이 중국 대신 한국을 가장 유력한 대체 공급처로 검토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바이어들도 중국산에 대한 대체 구매를 고려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들이 브랜드 제고와 품질 개선에 나서고는 있지만, 단시일 내에 이를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세계 점령은 오히려 우리 기업들에 세계 진출의 호기인지도 모른다.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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