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vs 이회창 … "내가 진짜 보수" 보수 적자론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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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경제 살리기를…시대정신으로 선택했다."(8.20,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

"경제 살리기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다."(11.7, 이회창 대선 출마 선언)

2007년 11월 한국 정치판에 낯선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보수 내전'이다. 누가 진짜 보수인지 '보수 적자론'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보수파 후보끼리 1, 2위를 다투는 현 상황은 '보수 대 진보'구도에만 익숙한 유권자들에게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집권이 유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자 '안보형 보수'와 '시장형 보수'의 분화가 생기고, 자기들끼리 격렬한 이념 투쟁을 벌이게 됐다.

이회창 후보는 보수 진영 내 이념 투쟁, 시대정신 논쟁을 동반하며 등장했다. 이명박 후보의 노선인 이른바 '시장형 보수'는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며, 일자리.성장기업.경쟁 등을 중시한다. 이념.명분에 집착하지 않는 실용형이다. 이명박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식 애국, 반김정일 구호에 의존하기보다 소득.고용 증대의 캐치프레이즈로 새로운 유권자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노선은 이명박 후보가 각종 네거티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30, 40대의 표심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핵심적 요인이며 한나라당 후보이면서도 '수구 꼴통'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웠던 이유다. 안보나 국가 정체성보다 상대적으로 시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50~60대 이상에선 한나라당을 지지하면서도 이명박 후보가 보수 진영의 적자(嫡子)는 아니라고 보는 유권자가 꽤 있다.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이른바 '안보형 보수'그룹이다. 이들은 햇볕정책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갖고 있고, 엄격한 대북 노선을 선호한다. 이명박 후보에게 보수이념적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6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할 때 이명박 후보가 "왜 소모적인 이념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발언을 섭섭해하며 이 후보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이회창 후보가 노린 것은 바로 이 틈새다. 이회창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안보형 보수' 노선을 전면에 들고 나와 이명박 후보와 대립 전선을 만들려 했다.

이회창 캠프에 참여한 최한수(건국대) 교수는 "우리가 대북 지원을 하는 이유는 북한을 자유화.민주화로 이끌기 위한 것인데 한나라당이 그런 얘기도 제대로 못 하는 현실을 이회창 후보가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 측은 그 같은 주장이 출마 명분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고려대 남성욱(북한학과) 교수는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것만큼 더 확실한 안보가 어디 있겠느냐"며 "이회창 후보의 주장은 보수우익그룹을 이명박 후보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북한식 통일전선전술과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미국 정치에 대입하면 부시 대통령이 '안보형 보수'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장형 보수'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있다.

명지대 김형준(정외과) 교수는 "이회창 후보는 '안보형 보수'노선을 지지하는 20% 안팎의 유권자들을 장악하고 있으면 설령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내년 총선 때 새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최대 강점은 중도 실용주의이기 때문에 이회창 후보의 등장을 의식해 이념적으로 우회전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시장형.안보형 보수=원래 보수주의는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유시장경제가 이념의 핵심 토대다. 그러나 한국은 6.25전쟁과 남북 대치의 영향으로 보수이념에서 안보 가치가 시장 가치보다 더 중심에 자리 잡는 상황이 전개됐다. 안보형 보수를 '1세대 올드라이트', 시장형 보수를 '2세대 뉴라이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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