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가 넘었을까?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창문의 커튼을 움켜쥐고, ‘돛을 달아라~돛을 달아라~’ 계속 큰 소리로 외치는 것 아닌가. 저 사람이 내가 알던 그 ‘모범생’이란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1분쯤 지나자 돛을 다 달고 난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시 그 모범생 얼굴을 하고서.
그날 밤의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밤마다 무대를 바꾸어 가며 ‘생쇼’를 했다. 꿈의 무대는 주로 명랑만화에 나오는 배경이었다. 덕분에 밤마다 우리 집 안방의 창문은 배 갑판이 되고, 나이트 테이블은 절벽이 되기 일쑤였다. 하루는 남편이 나를 부둥켜안고 유격 훈련 하듯 구르는 바람에 함께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남편은 내가 핑크빛 풍선으로 변해서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걸 잡느라고 그랬다고 했다. 그때가 결혼하고 나서 내가 가장 많이 살이 쪘던 때였으니 남편의 무의식 속에 ‘뚱땡이 마누라’ 걱정이 있었나 보다. 어쨌거나 밤은 나에게 수난의 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결혼 4년이 지나자 남편이 잠꼬대를 멈췄다. 드디어 잠자리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한 이유는 뭘까. 밤이면 태도가 돌변하는 남편이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가끔은 남편의 잠꼬대가 그립다. 그렇다고 다시 잠꼬대를 시작하면? 으악, 그건 안 돼.
(윤정애·주부·36·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11월 23일자 주제는 커닝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1월 19일까지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