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영화"태백산맥"여교사 이지숙役 오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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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오지혜란 이름은 낯설다.4년간 겨우 4편의 연극에만 출연한 경력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녀의 이름은 더이상 생소하지 않을 것 같다.최근 임권택감독의 『태백산맥』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인상적 연기를 화면에 남긴 덕분이다.
좌익임을 숨긴채 비밀세포로 암약하다 결정적인 순간 공산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여교사 이지숙이 그녀가 맡은 역이다.같은 학교 교사로 빨치산이 된 자신의 연인마저도 정체를 못 알아차릴 정도로 냉정한 역을 시종일관 침착하고 담담히 연기했다 .
그녀는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결코 예쁘거나 매력적인 편은 아니다.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남이 흉내내지 못할 독특한 이미지를만들어냈다.50,60년대의 한국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한국의 고전적 인텔리 여인의 평균적 모습이 재현됐 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실제 나이답지 않게 일제때나 해방공간의 인물역에 적합한 분위기를 스스로 꾸미고 연기해낸 것이다.
오지혜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연극연기전공)를 졸업한 91년 가을 『따라지의 향연』에서 조연으로 연극무대에 데뷔했다.이듬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에서 중견연극인 박정자씨와 둘만이서 두시간 가까운 극을 끌어나가 호평을 받기도했 다.93년 여름의 『샐러리맨의 금메달』에 이어 지난해말부터 『번지없는 주막』에서 주연을 맡아 지난 여름까지 장기공연을 이끌어냈다.
그런 그녀에게 영화출연은 일종의 외도인 셈.하지만 오지혜는 이런 일반인들의 도식을 거부한다.연기인이면 필요로 하는 어느 장르에도 출연하고 거기에 맞춰 연기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런 생각이 과감한 연기를 만들어냈다.
***연극인 부모… “그러나 나는 나” 오지혜의 인상을 차근히 살펴보면 어디서 본적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부부연극인 오현경씨와 윤소정씨를 부모로 둔 탓이다.
하지만 이 젊은 배우는 집에서도 부모와 딸로서 하는 대화가 따로있고 후배연극인으로서 하는 말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후광을거부하고 자유로운 한 연기인으로 계속 커왔다는 느낌이다.
내년초 어머니 윤소정씨와 함께 무대에 설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나이가 마흔을 넘으면 아버지 오현경씨와 함께 『황금연못』을공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이 연극은 부녀지간의 애틋한 정과 감정을 그린 것으로 상당한 내면연기가 필요한 작품이다.원숙한 중견연기자의 꿈을 키워가는 젊은 여인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글:蔡仁澤기자 사진:安聖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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