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대한민국 국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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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또 국익을 외면했다. 차일피일 미뤄왔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9일 처리하겠다던 공언과 달리 본회의 표결을 또다시 미뤘다. 한.칠레 FTA 비준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지난해 12월 30일과 지난달 8일에 이어 세번째다. 이라크 파병안은 지난해 12월 24일 국회로 넘어왔지만 9일 국방위만 통과됐을 뿐 본회의에는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두가지 안건은 국익과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 때문에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됐었다.

▶ 9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에 대한 찬반 토론이 끝나고 표결에 들어가려는 순간 농촌 출신 의원들이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의원들은 "이르면 16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처리하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때 가서 처리될지도 불투명하다.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의원들과 당리(黨利)를 앞세운 각 당 지도부의 소극적인 자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다음주 처리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한.칠레 FTA 비준안의 처리를 시도했으나 투표 방식을 둘러싼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발로 표결에 들어가지 못했다. 박관용 의장은 "11일 농해수위를 소집, 경제부총리와 농림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농촌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논의를 다시 하기로 했다"며 밤 늦게 산회를 선포했다. 이라크 파병안은 우여곡절 끝에 이날 국방위를 통과했으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뒤늦게 당정 협의를 요구하며 표결 연기를 요청,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도 '권고적 반대'라는 사실상의 반대 당론을 채택했다. 한나라당은 사실상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으면서도 "우리가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다"며 처리 연기에 동의했다. 이날 국회의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구속 중인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의 석방 결의안이 전격 상정, 통과됐다. 한나라당의 서청원 전 대표 측 의원들이 주도한 徐전대표 석방 결의안은 투표 의원 2백20명 중 찬성 1백58, 반대 60, 기권 2로 통과됐다. 徐전대표는 이날 오후 8시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다. 徐전대표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2일까지는 불구속 상태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역 의원이 석방 결의안을 통해 풀려나기는 1996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무소속 김화남 의원 이후 처음이다. 국회는 또 민주당이 제출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원의 (대선 경선자금) 수사 촉구 결의안'도 찬성 1백67, 반대 1, 기권 5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두 건 모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조 속에 통과됐다. 한편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전체회의에서 지구당을 완전 폐지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특위는 또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2백73명으로 유지하되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인구 상하한 기준을 10만5천~31만5천명으로 하는 선거구 획정에 잠정 합의했다. 이러는 사이 의사당 밖에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국농민연대 회원 1만5천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FTA 결사 반대'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 비상국민행동' 회원 1천5백여명도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정민.이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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