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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사상가 포퍼卿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역사는 스스로 진보하지 않는다.오직 인간만이 진보시킬 수 있을 뿐이다.』 역사의 필연(必然),그 결정론에 반기를 든 이시대의 사상가 칼 포퍼卿이 지난 17일 92세로 타계했다.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에서 69년 은퇴한 후 음악과 사색만을 벗해온 그는 「살아있는 금세기 최고 사상가」로 불렸다.
45년 영국(英國)에서 출간된 『열린 사회와 그 적(敵)들』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의 하나」로 꼽힌다.버트런드러셀卿은 민주주의를 이처럼 「심도있고 정력적으로 옹호한」책도 드물다고 했다.「열린 사회」라는 오늘의 유행어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대학에서 철학.물리학.수학.
심리학.음악을 연구한 그는 26세에 박사학위를 받고,과학철학의명저『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32세때 독일어로 출간했다.
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점령에 충격을 받은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쓰기로 작심했다.역사가 어떤 불변(不變)의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는 「열린 사회의 敵」으로 규정했다.마르크스는 물론 헤겔.플라톤까지 敵으로 돌렸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역사주의의 빈곤』또한 역사적 결정론에 대한 반박이었다.인간의 미래는 예언자가 아닌 인간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며 국가의 기능 또한 조장적인「사회적 엔지니어링」에 그칠 것을 주창했다.
그의「열린 사회」는 하이에크및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맞물려 80년대「레이건-대처 보수황금기」의 지적 뼈대를 이루었다. 포퍼가 항상 우려한 것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간의 혼동이었다.자율과 책임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는데서 모든 전체주의는 싹튼다고 그는 경고했다.
진화와 끝없는 반증을 골간으로 한 그의 지식이론과 과학철학은「소크라테스적 무지(無知)」를 향한 열린 마음이었다.
그의 이론에 대한 국제적 인정은 항상 몇십년씩 뒤처져왔다.34년 출간된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59년 영어로 번역되면서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론이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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