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이파 '해외출장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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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업가 송모(56)씨는 2년 전 하노이와 붕따우에 있는 호텔 카지노 두 곳을 인수했다. 현지 관리와 친분이 돈독한 부동산 업자 이모(62)씨도 송씨 투자에 일부 지분을 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씨가 중도금 지불을 계속 지연하자 송씨는 올해 초 계약을 해지했다.

앙심을 품은 이씨는 한국에 있는 폭력조직 양은이파에 "경영권을 빼앗아 달라"고 청탁했다. 부두목 강모(51)씨는 그의 심복 변모(49)씨에게 이 일을 지시했다.

"이번 건만 잘 처리하면, 베트남 카지노 경영에도 손을 댈 수 있어."(강씨)

"힘깨나 쓰는 애들로 네 명 모았습니다. 제가 직접 애들 데리고 가겠습니다."(변씨)

변씨는 '작전명: 베트남 태양을 보다'라는 작전계획서를 강씨에게 제출했다. 계획서에는 '작전에 임하는 우리는 인간불량품(송씨)을 제거하고 차후 이 회장님(이씨)께서 운영하시는 사업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태양처럼 번창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쓰여 있었다.

'작전'은 8월 3일 결행됐다. 현지 시간 오전 7시, 변씨와 조직원은 하노이에 있는 송씨의 집에 침입했다. 그들은 송씨에게 '이씨에게 (60억원 규모의 카지노) 소유와 경영을 모두 넘긴다'는 각서에 서명토록 했다. 변씨는 카지노에 송씨를 데려가 "권한을 이 회장에게 넘기니 잘 따라 달라"는 경영 포기 선언을 종업원 앞에서 하도록 시켰다.

이들은 근처 호텔에서 술을 마시고 송씨에게 술값을 계산하게 한 뒤 다음날 오전 2시에 풀어줬다.

서울지방경찰청은 6일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자를 협박해 경영권을 빼앗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강씨와 조직원 세 명을 구속했다. 변씨와 조직원 한 명은 지난달 22일 붙잡혀 구속됐다.

베트남 경찰주재관으로부터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서울에 머물던 강씨 등을 추적해 두 달여 만에 모두 검거한 것이다. "강씨가 수고비 명목으로 지분 참여까지 요구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강씨는 양은이파 부두목으로 19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에 가담하기도 했다. 81년 살인미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복역 중 20년형으로 감형돼 2001년 2월 출소했다. 변씨는 20년 동안 강씨의 옥바라지를 한 심복이라고 한다.

강씨는 출소 후 건설회사를 운영하다 2004년 공갈.폭행죄로 구속돼 1년1개월 복역했다. 지금까지 21년1개월을 감옥에서 지낸 강씨의 복역 기록은 폭력배로서는 최장 기간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강씨의 두목이었던 조양은씨는 18년,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는 17년을 복역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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