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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로빈 후드 근거지 '셔우드 숲'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13세기를 풍미했던 의적 로빈 후드의 근거지였다는 전설이 얽힌 영국의 셔우드 숲이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영국 노팅험셔 주의 에드윈스토시 인근에 위치한 셔우드 숲이 기후 변화와 개발로 황폐화하면서 면적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이 숲은 과거 전체 면적 404㎢의 대부분에서 나무가 빽빽했으나 최근에는 나무가 밀집한 곳이 불과 1.8㎢로 줄었다. 나머지 숲에는 나무가 듬성듬성 남은 상태다.

특히 이 곳에서는 수백 년된 떡갈나무들이 많이 서식해왔다. 오래된 것은 수령이 900살에 이른다. 삼림 전문가들은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큰 고대 떡갈나무의 서식지의 하나라고 말한다.

‘박동하는 숲의 심장’으로 1.8㎢의 나무가 빽빽한 곳에는 현재 997개의 고목이 자라고 있으나 200여 그루는 시들고 있다. 이 숲에선 해마다 한 그루 정도가 시드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올해는 7그루나 한꺼번에 말라버렸다. 이중 4그루는 2월 이례적으로 심하게 분 바람 때문에 부러졌다. 이 때문에 나무에 서식하던 희귀한 딱정벌레, 나방, 박쥐도 함께 사라졌다.

이 숲은 전설적인 도둑 로빈 후드 때문에 더 큰 사랑을 받아왔다. 로빈 후드가 악덕 보안관인 노팅험으로부터 숨고, 부자들을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는 전설이 수세기 동안 전달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로빈이 숙녀 마리온과 결혼했다는 전설로 알려진 도시인 에드윈스토 근처의 왕 떡갈나무는 셔우드 숲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다. 역사가들은 이 나무와 다른 떡갈 나무들이 로빈 후드가 활약하던 시대에는 어린 묘목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이곳의 나무는 영국의 역사 속 건축물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돼 왔다. 중세 시대 배는 물론이고,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짓는 데도 사용됐다고 한다. 근데 들어서는 농장과 탄광, 도시를 만들기 위해 숲이 계속 깎였다.

생태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숲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삼림 감시원들은 나무들이 죽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무별로 ‘메두사, 스텀피, 트위스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무가 마르거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세심하게 확인하고 최대한 오래 살도록 관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15개 환경 관련 단체가 숲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나무 25만 그루를 심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비용 조달이 문제다. 현재 국가 복권이 조성한 공익기금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논의중이지만 1억 달러(900억여원)의 기금을 놓고 경쟁하는 자선 사업이 많다. 셔우드 숲을 구하고자 모인 이들이 1억 달러를 얻을 수 있을지는 12월 TV프로그램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수목 보호 위원회 활동가 스틴 브래디는 “누군가 영국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셔우드 숲과 로빈 후드를 떠올리기 마련”이라며 “이 숲은 국가적 정체성의 일부이며, 현재 정말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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