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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일조권 왜 중요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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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일조권(日照權)을 둘러싸고 주민과 건축업자 간 소송이 늘고 있다. <본지 2007년 10월 24일 14면> 신축 구조물이 기존 건물을 가려 주민들의 햇빛 받을 권리를 침해해서다. 일조권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햇빛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일조권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 등을 짚어본다.

◆일조권이란=우리나라 헌법(제35조)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람이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 즉, 환경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건강 유지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햇빛을 쬘 수 있는 권리 즉, 일조권을 환경권의 일종으로 본다. 일조는 햇빛이 구름이나 안개 등으로 가려지지 않고 땅 위를 비추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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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햇빛 받을 권리를 둘러싸고 주민과 건축업체 간 법정싸움이 늘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와 다가구.다세대 주택 등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앙포토]

◆침해 여부 어떻게 판단하나=현행법에는 직접적인 일조권 관련 규정이 없다. 그래서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조권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4시간 이상,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2시간 이상 연속적으로 햇빛을 받지 못할 경우 일조권 침해로 간주한다.

동짓날을 택한 이유는 일조권을 적극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다.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이 건강을 위해 받아야 할 최소한의 햇빛의 양을 규정한 것이다. 실제로 북반구의 경우 동짓날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연중 낮이 가장 짧다. 남중고도란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 때의 고도다.

일조권 소송 전문가 이승태 변호사는 “학계에서는 일조권을 환경권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조권은 타인에게 침해받을 수 없는 소유권 개념으로 간주한다”며 “어떤 사람이 일조권을 침해받았다면 햇빛 받을 소유권이 박탈당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법률상 부동산 소유권은 땅 표면뿐 아니라 지상과 지하에도 미친다. 일조권 침해에 따른 손해 배상에 피해자가 소유한 건물의 재산 가치 하락분을 반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햇빛은 인체에 어떤 영향 주나=일조권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는 건강 차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햇빛은 뇌의 호르몬 분비샘인 송과체에서 나오는 멜라토닌을 자극해 밤과 낮을 인식하도록 하기 때문에 생체 리듬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멜라토닌은 햇빛의 정도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타는데 햇빛이 있으면 멜라토닌이 줄고 햇빛이 없으면 멜라토닌이 많아진다. 멜라토닌이 많아지면 몸의 기능이 둔해지는 반면 줄어들면 신체 기능이 활발해진다.

햇빛은 사람의 정서에도 영향을 준다. 성균관 의대 가정의학과 유준현(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적절한 햇빛을 쬐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돼 기분이 상쾌해진다”며 “햇빛은 우울증을 막아주는 자연 치료제”라고 말했다.

햇빛은 또 피부 세포를 자극해 비타민D를 만든다. 비타민D는 체내의 칼슘과 인을 흡수해 혈액 속에 보관함으로써 뼈를 튼튼하게 해 골다공증을 막아준다.

그렇다고 햇빛을 무작정 많이 쐬면 몸에 해롭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이민걸 교수는 “과도하게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자외선에 의해 손상된다”며 “강한 햇빛은 피부 노화를 촉진하고, 심할 경우 피부암까지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일조권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외국은 일조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일본의 경우 건축물이 인근 건물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규제할 정도로 일조권 보호에 적극적이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 등은 일조권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편이다. 국토가 넓어 타인의 일조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나라의 일조권 문제는 독특한 주거 형태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강원일(법무법인 지성) 변호사는 “일조권 문제가 불거진 근본 원인은 고층 건물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토지 이용 문화 때문”이라며 “인구 밀도가 높다 보니 고층 아파트 또는 공동 주택이 보편화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철저한 도시 계획에 따라 고층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탄력을 받는다. 건축업체도 창문을 다양한 방향으로 내는 등 일조권 보장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일조권은 삶의 터전이 되는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도 보장돼야 한다는 말이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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