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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정부' 생색에 세금 줄줄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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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애인 LPG차량 지원제도는 '장애인 이동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2001년 도입됐다. 장애인이 신용카드로 LPG를 넣으면 L당 240원씩 보조금을 준다. 정부의 조사 결과 혜택을 본 차량의 44%는 정상인 소유였다. 이 제도에 투입된 예산은 지난해에만 2715억원. 전체 장애인 예산의 29%에 이른다. 정부는 부랴부랴 올해부터 4~6급 장애인부터 제외시키고 2010년에는 이 제도를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올 1~6월에도 2만5000여 명의 4~6급 장애인이 보조금 혜택을 누렸다. 담당 공무원이 신용카드사에 할인 대상 명단을 넘겨주면서 전산착오를 일으킨 탓이다. 50억원의 혈세가 허공에 사라졌다.

#요즘 서울 강남의 S저축은행 객장에는 예금을 해약하려는 노인 고객들이 부쩍 늘어났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기초노령연금 신청자격을 맞추기 위해서다. 연금을 받으려면 재산을 월 소득으로 환산해 혼자 사는 노인은 40만원, 부부는 64만원 이하여야 한다. 매달 지급 연금이 최고 8만3000원이어서 '용돈 연금'이란 지적도 받지만 전체 금액을 합치면 내년에만 2조2000억원을 쏟아넣어야 할 판이다. 내년 1월에는 70세 이상, 7월부터는 65세 이상 300만 명에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S저축은행 관계자는 "상당한 돈을 맡겨두고 있는 고객도 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예금을 해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의 헤픈 씀씀이로 혈세가 곳곳에서 새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정부 조직과 군살을 찌웠다. 558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모두 5만7000여 명의 공무원을 늘렸다. 그 결과 공무원 인건비만 30%(5조원) 증가했다. 나라 빚은 4년 동안 150조원이나 불어났다.

"일만 잘하면 됐지 큰 정부가 무슨 문제냐"는 청와대의 반박과 달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푼 87조원의 토지보상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부동산 값을 폭등시켰다. 복지 예산을 크게 늘렸지만 양극화는 심화되고 절대빈곤층도 늘었다. '큰 정부=서민을 위한 정부, 착한 정부'라는 등식이 틀어진 것이다.

동국대 김종일 교수는 "지난 5년간 '큰 정부'실험을 통해 역설적인 교훈을 얻었다"며 "국민들이 좋은 의도의 정책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구 선진국들은 치열한 세금 투쟁 끝에 선진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며 "우리도 정치 민주화를 넘어 선진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국민들이 과세와 예산집행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큰 정부를 내세우는 분배론자들이 그 정당성을 유럽 복지국가에서 찾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곽태원 서강대 교수는 "유럽 복지국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3배 이상 많다"며 "그들조차 과도한 복지 피로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우리가 굳이 실패 경험까지 쫓아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9월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해 50년 넘게 지속해 온 복지 모델의 수정에 착수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유럽의 좌파 정권들이 잇따라 패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재정은 이미 깊은 병이 들고 있다. 내년부터 수조원씩 들어가는 기초노령연금제와 근로소득지원세제가 도입된다. 반면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세금을 거둬들일 기반은 빠르게 잠식되고 있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는데 정부 지출만 늘어나는 구도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는 "뻔히 내다보이는 재정 파탄을 막으려면 다음 정부부터 군살을 빼고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게 거둬 알차게 쓰는 정부,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정부 외에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없다는 이야기다.

◆특별취재팀=정경민 차장, 박혜민.윤창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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