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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연장안, 대선 후 표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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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상황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나 파병 연장 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낙관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런 상황은 파병 연장안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대통합민주신당이 지난달 22일 반대 입장을 확고히 한 뒤 만들어졌다. 신당에 파병 자체를 반대했던 민노당의 의석 수를 합하면 150석. 원내 과반을 넘는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고진화·배일도 의원 등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에 반대하는 정치권 일각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철학과 함께 정치적 고려도 담겨 있는 듯하다. 파병 연장을 반대하는 국민이 다소 많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기에 좋은 이슈이기 때문이다. 파병 연장이 대선 정국에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신당과 민노당은 파병 연장 반대의 명분으로 ‘대국민 약속 이행’과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내세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파병 연장 동의안 통과를 촉구한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반대 여론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병 연장이 불가피한 이유로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고, 자이툰 부대의 평화와 재건 활동은 지역 안정에 기여하고 있으며, 우리 기업의 이라크 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이툰 부대는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자이툰 부대는 2004년 9월 이라크 아르빌 지역에 파병된 이후 지역 재건에 앞장서고 있다.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은 채 의료진료 및 기술교육 등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민사작전에만 매진하고 있다.

자이툰 병원은 지금까지 연인원 6만8000여 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7개의 학습과정을 개설한 기술교육대는 1645명을 가르쳐 78%의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술교육대 입학 경쟁률은 무려 6대 1이다.

올해부터 쿠르드 지역에 한해 진출이 허용된 우리 기업의 수주 실적이 지난해 1700만 달러에서 올해는 3억5300만 달러(10월까지)로 급증했다. 발전소와 도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협상도 진행 중이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지난 2일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한·미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안은 대선 정국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대선을 겨냥한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국익을 고려한 판단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안을 대선이 끝난 뒤 표결에 부치자는 것이다. 어차피 12월 9일이 회기 마지막 날인 제269회 국회에서 2008년도 예산안과 산적한 민생법안, 18대 총선을 위한 정치관련법 등을 모두 처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 만큼 대선 직후 임시국회를 열어 미처리 법안 등과 함께 파병 연장안을 처리했으면 한다.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역할과 정치력에 기대를 건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