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도 M&A 강자 될 수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호 18면

신인섭 기자

“한국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의 호기를 맞고 있다. 한국 대기업처럼 창업주 가문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 M&A 성공 확률은 높다.”

맥킨지 M&A 최고 전문가 리처드 돕스 인터뷰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가 자사 내에서 M&A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리처드 돕스(사진) 글로벌 기업금융담당 디렉터를 지난 9월 서울로 발령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해외 M&A에 관심을 갖는 이머징마켓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의 M&A 컨설팅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그를 만나 성공적인 해외 M&A 조건과 방법 등을 들었다.

돕스 디렉터는 먼저 최근 한국 기업들이 해외 M&A를 재개하고 있는 데 대해 “긍정적인 변화”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 시장은 중국이나 인도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제품의 개발·수출만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회사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해외 M&A”라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 M&A에 몸을 사렸던 국내 기업들은 최근 잇따라 글로벌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두산이 미국 건설장비업체 잉거솔을, STX는 노르웨이 조선업체 야커 야즈를 각각 인수했다. 또 삼성전자가 이스라엘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트랜스칩을 사들였다.

돕스 디렉터는 “한국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해외 M&A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호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된 미국이나 영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업을 인수할 때 엄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업자 가문이 경영권을 쥔 기업의 경영인들은 사들일 기업의 가치를 꼼꼼하게 평가해 사들이게 마련이다.”

오너의 감독·평가를 받아야 하는 전문 경영인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실수할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상당수가 M&A에서 너무 높은 값을 치르는 바람에 별다른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 경영인은 주가를 유지·부양하기 위해 M&A 소식을 서둘러 알리고 싶은 나머지 양보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컨설팅회사인 헤이그룹은 지적했다.

돕스 디렉터는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M&A는 이익을 창출한다. 이를 어느 쪽이 차지
하느냐가 문제다. 인수자가 값을 많이 쳐주면 M&A로 발생할 미래 이익이 파는 쪽에 넘어간다.”

다만 그는 오너의 통제력이 약점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오너들은 인수 기업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보인다. 때로는 기존 주인과 경영권을 나눠 갖는 것도 좋은 M&A 방식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럽기업지배구조연구소(ECGI)에 따르면 글로벌 M&A 붐은 19세기 말 이후 주기적으로 일었다(표 참조). 그중 다섯 번째 열풍이 현재 진행 중이다. 특히 요즘은 중국과 인도 기업이 막강한 자금력과 탄탄한 전략을 앞세워 선진국 회사들을 잡아채가고 있는 모양이다(그래프 참조). 심지어 1980년대 ‘가미카제 거품’ 이후 숨죽인 일본 기업들도 M&A시장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경영정보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올 초~10월 말 사이에 사들인 해외 기업은 무려 223개 사나 된다. 인수대금은 116억 달러 정도다.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 그리고 수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왜 M&A에 소극적이었을까.

“해외 기업을 인수해 경영한다는 데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자신감에 차 있지만, 기업들에선 그런 기질을 찾아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아마도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현지경영에서 문화 차이를 걱정하기 때문은 아닌지, 그의 의견을 물었다. “문화 차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한국 학생이 미국 등 해외에 유학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 기업은 해외 현지문화에 익숙한 엄청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된다.”

어쨌든 요즘 국내 기업이 10년 만에 기업사냥 본능을 되살리고 있다.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지가 궁금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선진 경제권에선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회사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있고, 사모펀드(PEF)들이 자금 동원에 애로가 생겨 M&A에 주춤하고 있으며, 소비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사모펀드 활동이 줄어든 것은 경쟁자가 줄어 한국 기업에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소비증가세가 둔화하고 있어 인수한 기업의 미래 영업실적이 나빠질 수 있다. 현재 싼값에 사들였지만 결과적으로 높은 값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원화가치가 올라 매물로 나온 해외 기업의 값이 원화로 환산해 싸졌다고 해서 덜컥 사들이진 말라는 의미였다. 대신 그는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표적 기업이 사모펀드나 경쟁 기업에 먼저 M&A되는 것을 막는 단계다. 전략적 제휴 등을 맺어 이 회사와 유대관계를 맺어놓는 게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단계는 업무 제휴 등을 통해 표적 기업의 IT인프라와 자사 시스템이 서로 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 임직원 간 이해의 폭을 넓혀놓으면 더욱 좋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