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 펀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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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10면

“지금 네 번째 변신 중인 펀드세계에서 사모펀드의 기업공개(IPO)는 중대 전환점이다.”

펀드진화의 역사

미국 사모펀드(PEF)인 블랙스톤의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을 때인 6월. 미국 금융 전문가인 피터 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모펀드들은 블랙스톤을 계기로 경쟁적으로 IPO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큰손들이 고위험을 무릅쓰고 고수익을 쫓기 위해 만든 사모펀드는 이제 대중 투자자들에게 몸을 맡기게 된 것이다. 귀족 펀드의 대중화인 셈이다.

번스타인에 따르면 1990년대 이전까지 각종 펀드는 각개약진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후 거대한 돈줄인 연기금과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뮤추얼·사모·헤지펀드가 유기적으로 배열·연결되기 시작했다. 연기금과 국부펀드의 돈을 넘겨받은 뮤추얼펀드 등이 수족처럼 돈을 굴린다. 또 연기금 등 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모펀드 등은 기업 경영에 간여하고 있다. 펀드의 영향력은 인수합병(M&A)을 주도해온 사모펀드가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옴에 따라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펀드의 역사를 돌아보면 15세기 첫 등장 이후 크게 세 번의 변신 과정을 거쳤다(표 참조).

대공황 시기와 1차오일 쇼크, 미국 세법 개정 등이 계기였다. 그때마다 펀드는 시장과 경제 시스템, 법규 등의 변화를 수용하며 생존했을 뿐 아니라 더욱 막강해졌다.
최초의 근대적인 펀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 펀드였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은 통일제국을 건설한 직후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신대륙에 가면 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과 부호, 상인들의 돈을 모아 콜럼버스에게 투자했다. 사모·벤처 펀드의 성격으로, 수익금을 투자한 돈의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뮤추얼펀드는 1774년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암스테르담 상인인 아브라함 반 케트위치는 엔드라그트 마크트 마그트(Eendragt Maakt Magt)라는 증서를 만들어 동료 상인과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팔았고, 이 증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됐다.

뮤추얼펀드는 1868년 영국으로 전래됐고 이어 1924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침 세계 경제 패권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 증시는 폭등했다. 이때 뮤추얼펀드는 막대한 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됐다. JP모건과 골드먼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뮤추얼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과잉은 파국으로 끝나는 법.

뮤추얼펀드는 주가조작 등 불법·탈법 행위를 저지르다가 1929년 대공황으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겼다. 결국 펀드시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개혁 철퇴를 맞았다. 투자자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고, 개별 펀드를 독립적인 주식회사 시스템으로 바꿔 투명성을 강화한 게 당시 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펀드의 1차 변신이었다.

미 인덱스펀드 자산운용사인 뱅가드의 설립자인 존 보글은 “루스벨트 개혁과 자산운용사의 노력으로 뮤추얼펀드는 신뢰성을 회복해 1950년대 이후 다시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초 뮤추얼펀드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오일쇼크와 경기침체로 주가가 크게 떨어진 1971~73년 뮤추얼펀드는 그동안 몇몇 종목을 매수한 뒤 장기 보유하는 전략(buy-and-hold) 대신 시장 포트폴리오 투자전략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포트폴리오 전략이란 분산투자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최적 종목군을 하나의 꾸러미로 구성한 뒤 일정한 주기로 수익과 위험을 재평가해 편입 종목을 교체하는 것이다. 자산운용 노하우 측면에서 당시로선 놀라운 변화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펀드의 2차 변신이라고 부른다.

한편 연기금은 로마시대 군인 연금이 효시라고 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하지만 근대적인 공적 연금은 1850년대 미국에서 탄생했다. 미국의 산업혁명과 대기업 탄생이 본격화한 1870년대에는 기업 연금이 등장했다. 이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연기금은 몸집이 부쩍 커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연기금은 주로 은행 예치나 정부채권 매입에 치중하는 운용 전략을 구사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1980년대 초 미국 정부가 연기금 투자에 감세와 면세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한 뒤부터였다. 마침 저평가됐던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와 맞물려 연기금은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펀드의 3차 변신이었다.

이렇게 진화해온 펀드는 현재 네 번째 변신 중이다. 펀드가 경제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관심을 갖는 ‘유니버설 오너십’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지구온난화·반부패·빈곤퇴치 등 정치·사회·환경 문제에까지 입김을 불어넣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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