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12살 소년병 “전쟁이 날 살인 무기로 만들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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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라이베리아의 소년병이 어깨에 총을 멘 채,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로 완전히 파괴된 간타 지역의 외곽길을 걷고 있다. <사진제공=북스코프>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북스코프,
327쪽, 9800원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 만큼 쉬웠다”는 열두 살 소년이 있다. 축구보다 총 닦기를 즐기고, 간식 대신 마리화나를 피우며, 영화 속 ‘람보’처럼 멋지게 적의 목을 따는 게 꿈인 아이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전쟁이 그의 가족과 고향을, 순수한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소년병이었던 저자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다큐멘터리·영화·소설이 전 세계 30만 소년병의 비극을 다뤄왔어도 소년병 자신이 직접 쓴 회고록은 드물었다. 이제 26세 청년이 된 저자는 국제인권감시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자문위원이다. 죽음이 일상화된 전장에서 살아남은 것도 용하지만, 그가 고통스런 재활과정을 거쳐 인권운동가로 거듭난 것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이 책 속엔 상상하기조차 힘든 전쟁의 참상과 함께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낸 한 소년의 놀라운 용기와 의지가 생생히 그려져 있다.

친구들과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나가려고 집을 떠난 이스마엘은 반군의 공격으로 자기 동네가 불바다가 된 것을 알게 된다. 무작정 도주하는 몇 달 간 그들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가족이 반군에 몰살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이스마엘과 친구들은 정부군쪽 소년병이 된다. 공포에 질렸던 첫 전투는 이내 과거가 되고, 이들은 복수심과 마약 기운에 취해 반군이라면 제 또래 소년병조차 거침없이 쏴 죽이는 ‘살인 무기’가 된다.

2년여 만에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구출돼 재활센터에 보내진 뒤에도 금단증상과 악몽, 시도 때도 없이 치미는 폭력 욕구에 시달리던 이스마엘. 하지만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며 모든 것을 이해해준 어른들 덕에 그는 상처를 이겨내고, 소년병 대표로 유엔 회의에 나가 연설까지 한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년병이 되었지만… 복수는 복수를 불러 끝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제 소년병이 아니라 그저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온 세상 아이들이 그저 아이로 남을 수 있는 그날까지 이스마엘의 증언은 계속될 것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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