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시시각각

구호와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정직, 질서, 창조, 책임, 본분, 분수, 주인의식, 국민화합, 가정교육’.

이 아홉 가지 단어를 아직도 기억하는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며 내놓은 9개 실천 덕목이다. 1980년대 초 군대생활을 한 사람은 고참들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9대 덕목’을 암기해야 했다. 연병장 가에는 9개 구호를 쓴 입간판이 열 지어 세워져 있었다. 모든 부대원은 중대장이나 선임하사가 시키면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정직! 질서!…”라고 외쳐댔다. 속으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이 따위 구호를 만든 자기들은 정직한가, 창조적인가, 군인의 본분을 얼마나 지켰는가, 광주를 저렇게 해놓고 국민 화합을 떠드는가…. 기억이란 게 참 신기해서 어떤 것은 아무리 외우려 애써도 쉬이 머리에서 새나가는 반면 이런 쓰레기 구호는 얼마 되지도 않는 뇌 용량을 오래도록 잡아먹으며 장수한다.

‘정직, 질서…’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글자 간판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다. 교보생명 빌딩에 붙어 있는 가로 20m, 세로 8m의 ‘광화문 글판’이다. 91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17년째다. 글판은 광화문 말고도 서울 강남 교보타워와 부산, 광주, 대전, 인천 등 전국에 6곳이 더 있다. 글귀를 한 번 갈아끼우는 데 1억5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9월에 새로 등장한 글은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의 첫 연이다. 원작 시는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인지를’인데, ‘를’자 한 글자가 빠졌다. 운율을 맞추려고 시인의 양해를 얻어 손을 보았다고 한다.

광화문 글판이 처음부터 고상한 품위와 격조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구호 수준을 맴돌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지금 방식으로 진화했다. 91년 등장한 첫 문구를 보자. ‘도약,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 낯익은 재래식 16자 표어다. ‘아직도 늦지 않다. 다시 뛰어 경제성장’(93년)도 마찬가지. 기업이 마련한 간판이니 자사 홍보에 활용하려는 유혹이 없었을 리 없다. ‘세계보험전당 월계관상 수상’(96년), ‘오늘의 교보생명 내일의 경제부흥’(97년)처럼 대놓고 광고도 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국민의 마음이 스산해졌다. 신용호 당시 교보생명 회장(2003년 타계)이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문구가 확 달라졌다.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98년)는 고은의 작품, ‘사랑한다는 것은 최고의 삶이며 최고의 삶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99년)는 서은영의 글이었다. 김용택, 노천명, 서정주, 이성부, 박재삼, 김종삼, 정호승 등 우리말의 최고 장인들이 빚어낸 글귀들이 글판을 장식하면서 광화문도 빛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관할 종로구청의 반응이다. 글판 한 귀퉁이에 ‘교보생명’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을 때만 해도 불법 옥외광고물에 해당됐다. 그러나 기업 이름을 없애고 순수한 시구 위주로 운영하자 단속하기가 머쓱해졌다. 종로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광고물이냐 아니냐가 아직 애매하긴 하지만 공익성을 감안해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인지까지는 몰라도, 말하는 사람의 격(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확실하다. 염치도 없이 ‘정직, 질서…’를 내건 군부정권의 천박함과 폭력성을 상기해 보라. ‘문민’ ‘국민’을 거쳐 ‘참여’를 내건 정권을 맞았는데도 우리 지도자들의 언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설익고 삐딱한 데다 날까지 선 언어 구사는 국민 모두를 질리게 만들었다. 낯 뜨거운 욕설과 ‘패륜아’니 ‘히틀러’니 하는 말들이 여야 후보 진영을 오가는 것을 보면 다음 대통령만은 말의 격을 갖춰 달라고 부탁하는 게 무리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든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