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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박 구출하라" … 미 해군 특별한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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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지난달 30일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 납치된 북한 선박을 구출하는 작전을 펼쳤다. 미 해군은 도움을 요청받자 즉각 구축함을 파견하는 등 신속하게 행동했고, 부상한 북한 선원들을 응급 치료했다. 그동안 북한 화물선을 감시.검색 대상으로 여겨온 미군의 이러한 행동은 6자회담의 진전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북.미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 해군뉴스(Navy News)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바레인에 있는 연합해양군사령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국제해사국(IMB)으로부터 "북한 선박 대홍단호가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북동쪽으로 110㎞쯤 떨어진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나포됐으니 구출해 달라"는 급전을 받았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북한 선박 ‘대홍단호’구출작전에 투입된 미 구축함 제임스 윌리엄스함. [AP=연합뉴스]

미군과 영국.프랑스.독일군으로 이뤄진 사령부는 즉시 대홍단호에서 90㎞쯤 떨어진 곳에서 작전 중이던 미 구축함 제임스 윌리엄스함에 구출 명령을 내렸다. 윌리엄스함은 먼저 헬기를 급파했고 정오쯤 현장에 도착했다.

미군은 무선으로 8명의 해적들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명령했다. 해적들이 군함을 보고 당황해 하는 사이 북한 선원들이 그들을 덮쳤다. AFP통신은 "선원들이 감쳐 뒀던 총기를 들고 해적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선원과 해적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해적 2명이 사망했고, 선원 3명이 부상했다.

선원들은 해적을 제압한 뒤 미 해군과 교신해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위생병 3명이 대홍단호에 올라 부상자 3명을 응급처치한 다음 군함으로 옮겼다. 대홍단호는 체포한 해적들을 데리고 모가디슈항으로 이동했다.

6390t급인 대홍단호는 모가디슈 무역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열흘 전 인도에서 선적한 설탕을 모가디슈항에 내려놓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 뒤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중 해적을 만났다고 한다. 아프리카 연맹 평화유지군의 패디 안쿤다 대위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배의 정박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해적으로 돌변한 것 같다"며 "애초 해적은 선원 석방 대가로 1만5000달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대홍단호가 북한 선박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적극적인 구출 작전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 선박을 돕기 위해 군사 활동을 한 게 신기하다'는 기자들의 물음에 "해적 문제는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군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운 것 같으나 미군의 신속한 작전은 북한에 좋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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