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야금 열 대 끼고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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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 삶이라는게, 단순해요. 가야금을 연주해 보고 싶어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한 평생 외길을 걸어온 거죠.”

 국악인 황병기(71·사진)씨의 말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하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선 그가 걸어온 ‘외길’이 그가 새로 만든 길이다. 그는 기존 음악을 답습해 오던 국악계에 ‘창작 국악’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정악과 민속 음악을 아우르는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그만의 독특함이다. 그가 ‘국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중·고를 나와 서울법대를 다니면서도 그의 가야금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발이 편하다며 짚신을 신고, 몸에 맞는다며 고교시절 교복을 입은 채 가야금을 끼고 다니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영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가 여대생과 미팅에도 무심하고 유행이라고는 통 몰랐거든요.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괴짜같은 성격 때문에 그렇게들 부르더라고요.”

 법대 졸업 이후 국악계에 투신, 한국 국악사를 새로 써온 그는 칠순인 지금 오히려 ‘청년’처럼 살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직접 관리한다.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담은 글을 하루에 하나 이상 올리고 거기에 붙는 댓글에 또 댓글을 달아준다. ‘ㅎㅂㄱ’라는 아이디는 하늘색으로 예쁘게 디자인돼 있다.

 “홈페이지는 몇해 전 아는 사람이 만들어줘 쓰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도 있어 좋더라구요. 지금은 중간 관리자 없이 내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 뭐 어려울 게 있나요. 글 쓰고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황씨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하면 그가 연주한 가야금 산조가 컬러링으로 울려퍼진다. “컬러링은 젊은 사람이나 하는 줄 알았지요? 나이 든 사람한테 전화해도 ‘따르릉’ 소리 대신 우리 음악이 나오면 기분 좋잖습니까.” 그는 통신 회사에 전화를 직접 해 전화 거는 사람을 위한 선물로 이 음악을 마련했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퓨전 국악그룹 ‘여울’은 ‘황병기의 제자’라는 점을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개량 가야금을 연주하는 4 명의 이화여대생들은 신선한 음악으로 새로운 것을 원하는 청중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황씨는 “나는 개량된 악기를 써본 적이 없지만 젊은 사람들이 본질을 잊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공연장의 환경이 바뀌고 청중들의 취향이 바뀐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명금(名琴) 10대를 집에 놓고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서울 아현동 자택의 1층은 5살 연상의 부인 한말숙(소설가) 씨가, 2층은 자신이 쓰면서 서로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는 2일부터 본지에 자신의 ‘국악인생’을 반추하는 글을 싣는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오동 천년, 탄금 50년’이다. 황씨는 “단순한 삶이었지만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억을 정리하려 한다”고 밝혔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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