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도전! 엄마들의 고시 ‘주부 모니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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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CJ 홈쇼핑, 휘슬러 코리아 등에서 제품 평가와 아이디어 개진 등의 활동을 펼치는 주부 모니터들.

CJ 식품연구소에서 주부 모니터 요원들이 새로 출시 될 스파게티를 시식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 4월 한국담배인삼공사 정관장이 모집한 제1기 주부 모니터에는 12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선발 인원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선발을 담당한 김미성 대리는 “지원서를 읽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특정 상품 사용후기를 자기 블로그에 올려 해당 기업의 ‘입소문 마케팅’을 돕는 서포터스 경쟁률도 20 대 1을 가볍게 넘는다. 로봇물걸레청소기를 생산하는 한 업체의 경우 최근 서포터스 6명을 뽑는 데 2100여 명이 원서를 냈다. 350 대 1의 경쟁률이다.

주부 모니터는 이처럼 합격이 힘들어 ‘모니터 고시’로 불린다. 하지만 원서를 내는 족족 뽑히는 사람도 있다. 최근 4년간 80여 개 업체의 모니터를 거친 이현영(33)씨. 합격률을 따지면 95%쯤 된다. 지난해 초부터 13개 업체의 모니터를 거쳤던 김준희(41)씨도 거의 80% 가까운 합격률을 자랑한다. 김씨는 현재 아동교재 출판사를 비롯한 4개 업체 모니터를 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현재 활동 중인 기업 주부 모니터로부터 합격 노하우를 들었다. 주부 모니터 정보를 제공하는 미즈(www.miz.co.kr)의 박유경 부장의 도움말도 참고했다.

지원 업체 공부는 필수

지원하는 업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회사 제품을 써본 적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지원한다면 불합격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 없다. 거의 모든 기업이 ‘우리 제품을 즐겨 써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보면 된다. 세제업체에 지원한다면 그 회사의 제품을 종류별로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한다.

모니터로 일하는 업체에 대한 ‘충성도’를 중시한다는 얘기다. 한 수입주방용품 업체의 경우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끼던 귀사의 압력솥을 물려받았는데, 쓸 때마다 어머니의 잔잔한 사랑을 느낀다”는 사연을 지원서에 써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경쟁업체의 제품에 대한 비교도 필수다.

기업들이 특히 눈 여겨 보는 것 중 하나가 신제품 아이디어다. 지원자가 회사의 경영방침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희씨는 8월 한 제과업체에 원서를 내면서 신제품 세 가지를 제안했는데, 운 좋게도 당시 그 업체가 개발하고 있던 제품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져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업마다 ‘원하는 조건’ 다르다

제과업체는 어린 자녀가 많은 지원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동도서 출판사는 자녀가 많거나 유아교육 등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우대한다. 아파트 건설사는 입주 5년이 안 된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눈여겨본다. 이런 점을 잘 살펴 가급적 자신의 전공이나 인적 사항과 관련 있는 곳을 지원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령대는 대체로 33~37세가 많이 뽑힌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선호’이지, 100% ‘보장’은 아니다. 선호 연령대를 한참 벗어났지만, 관록을 인정 받아 여러 회사의 모니터 활동을 수 년째 해오고 있는 김경애(50)씨가 좋은 예다. 자녀가 다 컸더라도 친척 아이나 동네 아이와 접촉할 기회가 많다면 제과업체나 아동도서 출판사에 지원하면서 밝히면 된다. 지난해 말 K건설 모니터에 합격한 이상희(46)씨처럼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모델하우스 방문 등을 통해 브랜드 아파트를 꼼꼼히 둘러본 소감을 제출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글쓰기 실력, 네트워크가 중요

글을 잘 쓴다면 1차로 제출하는 서류심사에서 일단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모니터의 주된 활동 중 하나가 제품 리뷰 쓰기이므로 기업들은 일목요연한 문장력에 점수를 주게 마련이다. 온라인 활동이 활발한 사람도 기업들이 뽑고 싶어한다. 블로그에 올린 제품 후기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돼 홍보 효과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동종 업체에 거듭해서 지원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것. A업체의 모니터가 끝났다면 최소한 6개월은 지나고 나서 B업체에 응시해야 한다. 기업들이 주부 모니터제를 운영하는 이유는 다른 업체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서다. 사람의 머리엔 한계가 있으므로 A업체에서 했던 얘기를 B업체 가서 또 할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에 동종 업체 모니터를 여러 군데 하는 것도 금물이다.

기선민 기자, 정현주 패밀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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