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신드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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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8면

앞길이 막막할 때 좋은 길잡이를 만나는 것만큼 반가운 일은 없다. 지난주 국내 증시가 그랬다.

우리 시대의 최고 투자자로 꼽히는 워런 버핏이 대구를 방문해 “한국 주가는 여전히 싸다”고 말했다. 중국 증시에 대해선 “과열”이라고 단언했다.

주가는 그의 발언 직후 급등했다. 직접적 연관성을 입증하긴 힘들지만, ‘버핏 효과’ 덕분에 증시는 2000고지를 손쉽게 탈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중국 펀드로 쏠렸던 투자 자금도 국내 펀드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국내 증시에는 버핏에게 뒤지지 않을 길잡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미래에셋이다. 요즘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래에셋 따라 하기가 유행이 됐다. 미래에셋 펀드가 사들인다고 소문난 주식은 개인들의 가세로 급등하기 일쑤다. 지난 주말 정보기술(IT)주들이 모처럼 뜀박질한 것도 미래에셋이 매수한다는 소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미래에셋 펀드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됐다. 새로 들어오는 펀드 자금의 60%가량이 미래에셋으로 쏠리고 있다. 자금이 풍족하다 보니 시장을 리드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급등한 조선·철강 등 중국 관련주와 지주회사 주식들은 미래에셋의 사랑을 듬뿍 받은 종목들이다. 은행과 삼성전자·현대차 등이 버린 자식 취급을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미래에셋이 거들떠보지 않은 탓이다.

미래에셋 펀드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주식 굴리는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가지수가 40% 오르는 동안 미래에셋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이보다 15%포인트나 높은 55%를 기록했다.

미래에셋의 파워는 이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에셋의 성장은 곧 한국 자본시장의 성장을 의미할 정도다. 그렇다 보니 우려와 질시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쏠림 현상은 ‘바이코리아 펀드’와 같은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동안 미래에셋은 강세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반면, 약세장에선 고전했던 게 사실이다. 2001년과 2006년 조정장세 때 뒤뚱거림이 심했다. 시장이 내림세로 기울면 그동안 돈이 많이 몰렸던 곳에서 자금 이탈도 심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관건은 어떻게 대비하느냐다. 미래에셋은 투자자들에게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짜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자 자산도 주식 일변도에서 벗어나 부동산과 실물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가라앉더라도 충격이 크지 않을 자산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성장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쏠림과 거품은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소외당하는 쪽의 각성과 분발을 끌어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이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것을 보고, 박현주 회장은 칼을 갈아 오늘의 미래에셋을 일궈냈다. 지금의 미래에셋 독주가 제2, 제3의 미래에셋을 키우는 자극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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