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12.내일을 향해 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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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순호라는 사람의 뚝섬경마장식 자막 번역으로 화제가 됐던 『스팅』의 3인조 조지 로이 힐 감독과 폴 뉴먼.로버트 레드퍼드가 만든『내일을 향해 쏴라』는 무법자나 범죄자를 낭만적인 영웅으로 미화하던 전통의 뒤집기 해체작업이다.
로빈 후드는 떼강도의 두목이지만 영화에서 우리들이 만나는 그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는가.서부의 유명한 악당 제시 제임스.빌리 더 키드.댈턴 갱도 마찬가지요,『대부』의 돈 콜레오네와 금주령 시대에 시카고를 쥐고 흔들던 알 카포네. 마 란자노. 러키 루치아노의 경우도 마찬가지고,따지고 보면 임꺽정과 홍길동도직업상으론 도둑놈들이다.
조 발라키 본인이 『60분』에 출연했을 때 영화속에서 찰스 브론슨이 연기한 인물과는 달리(정말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차안에서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이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곤 과연 무법자들의 미화작업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바람직한 일 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총잡이들의 몰락기.무법이 곧 자유이던 시절은 가고 법과 질서에 쫓기는신세가 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강도질로 밥벌이하기가 점점힘들어지는 새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만 새우는 더러운 직업 비렁뱅이 산도둑 신세로 몰락해볼리비아로 쫓겨간다. 그곳에서 스페인어로 "우리는 강도다 손들어.모두벽을 향해 서.돈내놔.금고 열어!"따위를 종이쪽지에 적어 들고다니며 궁상맞게 웃기는 강도질을 하다 계속되는 추적끝에 결국 시골마을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영화에선 상과하 의 로버트 미첨.쿠르트 위르겐스처럼 두뇌싸움을 벌이는 추적이 가위 일미로 잡힌다.보통 영화같으면 주연노릇을 하는도망자가 추적을 떨쳐버리기가 보통이지만 여기에선 어림도 없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밤낮으로 그냥 쫓아오기만 하는 집요하고 철저한 추적대는 와일드 번치에서 활용된 망원기법으로 멀리서 끌어당겨 거리감이 없으면서도 영화가 끝날때까지 한번도 얼굴을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루퍼트.로드 볼티모어란 이름까지 밝혀지면서도 얼굴없는 그추적자의 정체는 무엇일까.대단히 상징적인 기법이다.
이 영화는 열차를 강탈하는 영화속의 흑백영화로 시작해 볼리비아로 여행하는 과정은 흑백스틸사진에 노란 모노크롬을 덮는 더블톤 기법을 사용,녹슨 빛깔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겠다며 두사람이 총을 쏴대면서 죽으러 뛰쳐나오는 장면이 시간에 저항하는 탈출을 상징하듯 얼어붙으면서 활동사진이 서서히 스틸사진으로 변해가는 장면은 세월의흐름을 막아보려는 안간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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