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시장원리 도입 대국료는 없애고 64강부터 상금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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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둑계에 조용한 바람이 불고 있다. 프로바둑에도 '시장원리'를 적극 도입하자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에 유창혁 9단의 모습이 보인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란 찬사를 받으며 세계무대를 석권했던 유 9단은 1년 여 전 한국기원 상임이사를 맡았고 이후 "프로기전부터 변해야 바둑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을 계속 펴왔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한국기원을 찾아갔다. 올해 만 41세가 된 유 9단은 분당에서 유창혁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바둑TV의 해설자로 활약하면서도 한국리그에서 90%의 승률을 기록하는 등 현역기사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1인 4역이다.

-속기는 젊은 기사들의 전유물인데 한국리그에서 개인전적이 9승1패다. 삼성화재배에서도 8강에 올랐다. 제2의 전성기라는 소리마저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가.

"젊은 시절처럼 바둑에만 순수하게 몰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나이 때문에 승부에 지장을 받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승부를 선택하고 여기에 집중하면 어느 정도의 성적은 낼 수 있다."(유 9단은 한국랭킹 23위. 올해 29승13패로 전체 승률은 69.5%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바둑에 시장원리를 도입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예를 들면 대국료를 없애고 64강부터 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나 외국 기사에게도 대회를 개방하는 등 팬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다."(프로바둑은 한번 프로가 되면 영원히 대회 출전권을 갖게 되고 대국을 하면 승패를 떠나 대국료를 받는다. 프로기전이 생긴 이래 50여 년간 이어져온 제도. 그러나 64강 이상만 상금을 받게 되면 실력이 떨어지는 기사에겐 출전권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프로기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그래서 두려워하는 기사들이 꽤 있다. 먼저 손해 보는 기사들 문제도 있고… 노장뿐 아니라 젊은 기사들도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프로기전부터 바뀌지 않고서는 바둑 발전은 불가능하다. 이 점은 다수 기사들이 이해하고 있다."

-한국기원 이사회와 집행부는 어떤 입장인가.

"기사들만 뜻이 맞으면 그걸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의견 통합이 쉽지 않고 진통은 필연이지만 결국은 잘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분당의 유창혁 도장은 잘 되고 있나.

"최규병 9단, 김영환 8단과 같이 하고 있다. 연구생 1조가 내 담당인데 이들과 시합이나 최신 기보를 복기하는 것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바둑 보급이다. 도장은 프로기사 양성소라서 보급과는 차이가 있다."

-젊은 기사들이 도장에서 합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인데.

"이영구 6단과 최원용 5단은 아예 합숙을 하고 있고 박영훈 9단은 반쯤 합숙을 한다. 일류 기사들인데도 그걸 내세우지 않고 신참처럼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성적이 좋은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것 좀 물어보자. 부인과 사별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재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나.

"(얼굴을 붉히며) 그 문제는 언급하지 말자. 아이들이 벌써 네 살과 여섯 살이다. 내가 대회에 나가면 TV를 보며 아빠 이기라고 응원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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