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바둑칼럼>서양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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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白人사회의 바둑광 중에서도 濠洲의 돈 포터(59)는 꽤 유명한 사람이다.전직교수이고 목장주인 포터의 실력은 겨우 아마초단.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를 구경하며 여행하는 것이 그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는 바둑 때문에 일본어에 능통해졌고 중국어는 論語를 줄줄 읽는 정도가 됐다.이제 마지막 탐험지인 한국을 꿈꾸며 한국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포터는 자기 목장의 목동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데 바둑을 배우기 싫으면 이곳을 떠나라고 할 정도로 강경하다.깡촌의 목동들은미칠 노릇일테지만 포터는『지적경험이 없는 그들에겐 사색과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그들은 만족하고 있다』며 오 히려 자랑스러운 얼굴을 한다.얼마 전 기자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 그는「바둑과 음악의 밤」을 열어 호주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넓혀주었다며 다시 자랑스러운 얼굴을 짓고 있었다.
데이비드 크라이브5단(38).이 사람은 집념의 승부사다.시드니의 공무원인 그는 몇년전 호주남단 태즈메이니아섬에서 열린 호주오픈대회에서 당시 이곳의 최강자였던 한국인 韓相大(시드니大교수.54)6단에게 결승에서 패했다.東京의 세계아마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호주대표권이 걸린 한판이었다.이를 위해 한달의 휴가까지 얻어 필사적으로 준비했으나 또 패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韓씨에게 말했다.
『죽기 전에 반드시 당신을 꺾고야 말겠다.당신이 먼저 죽으면무덤 속으로 찾아가 당신을 깨워서라도 반드시 꺾어보이겠다.』 눈물을 글썽이며 창가에서 몇시간이나 망연자실하던 크라이브의 모습은 엉뚱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그래서 이번 방문길에 크라이브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니 『그는 호주바둑계에서 영원히 축출됐다』는 대답이다.이유는 『매너가 나빠 棋道 에 위배되는 행동이 잦았다』는 것.생각하면 우습다.크라이브란 사람은 韓씨가한국의 평범한 프로에게 아득한 석점바둑인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더라도 그의 집념은 가상했는데 지금 바둑을 두지 못하는 크라이브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호주의 白人들은 바둑을 지식인의 고상한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매너에 대해 무자비했는데 이 점은 꽤 당혹스런 일이었다.
호주바둑은 라이벌 뉴질랜드보다는 강하지만 미국.유럽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그 지역의 바둑수준은 누가 보급의 주체냐에 따라결정되는데 호주는 중국이민 吳淞笙9단이 한국으로 떠나버린 것을아쉬워하고 있다.현재 호주바둑협회장은 韓相大씨 .그는 20년동안 많은 「클럽」과 대학에서 강연하며 유창한 영어로 바둑을 보급해왔는데(실제 바둑보급의 가장 큰 장애는 언어문제다)그 공로로 유색인종으로는 최초로「단체장」으로 피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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