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 - 55 … 이명박·정동영의 표심 유혹 스타일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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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9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문화예술인들과의 간담회 ‘차 한잔의 대화’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후보 왼쪽은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左).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후보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연장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右). [사진=강정현 기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격식 파괴가 흥미롭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후보는 여의도 정치행태에 반감을 갖고 있고, 방송기자 출신인 정 후보도 '대중의 눈높이'를 중시해 둘 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두 후보의 의표를 찌르는 언행이 대선 정국에 쏠쏠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선거 전략가들은 "이 후보의 격식 파괴는 보수정당에 묻어 있는 낡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려는 노력이고, 정 후보의 격식 파괴는 젊고 역동적 이미지를 극대화해 상대방을 노쇠하게 보이게 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옷에 묻은 고추장, 걸레로 닦아내=이달 초 경남 김해의 화훼마을을 방문한 이 후보는 티셔츠 차림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했다. 바지엔 허연 농약이 묻었고, 비빔밥을 먹다 흘린 고추장으로 상의가 얼룩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코멘트를 요구하는 방송기자들의 요청을 받은 이 후보에게 측근들은 "옷을 갈아입으라"고 권유했다.

이 후보는 순식간에 비닐하우스에 있던 걸레로 얼룩을 닦아내고 "감쪽같지 않으냐"며 점퍼를 걸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땐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이었다.

후보실과 당직자실에 있던 소파를 "사무실에 웬 소파냐"며 걷어낸 직후, 당사 6층 후보실 여직원의 차 심부름 관행도 없어졌다. 이 후보가 "왜 고급 인력들이 차를 나르느냐. 정수기를 가져다 놓고 필요한 사람이 직접 타먹도록 하자"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후보실과 회의실엔 정수기와 일회용 컵, 커피믹스가 즉각 배치됐다. 외국인 VIP 아니면 손수 커피를 타먹는 셀프서비스가 정착됐다.

'귀빈 소개→인사말→구호 제창'으로 진행됐던 선대위 발대식 대신 본인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토크쇼 사회자인 것처럼 행사를 주도한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러선 핫바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음식이 남으면 안 된다"며 반으로 갈라 측근들에게 나눠주고, 식사를 하고 나올 땐 측근이 권하는 구둣주걱 대신 손수 구두 밑에 손을 넣어 신는 경우가 많다.

◆와이셔츠 소매 걷어 올리기=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 후보는 "칠판을 이쪽으로 가져다 달라"며 분필을 집어들었다.

정 후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로 '가족' '기회' '좋은 성장' '통합' '평화'란 단어를 줄줄이 칠판에 쓰고, 상대 개념으로 '정글 자본주의' '교육 양극화' '재벌 경제' '약육강식' '대결주의'를 써서 대비시켰다.

족집게 학원강사나 대학교수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정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에서도 화이트 보드에 마커로 글을 써 내려가는 같은 방식을 썼다. 한나라당 이 후보와 자신의 주장을 대비시키는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정 후보가 선택한 공세적 접근법이다.

23일엔 "차를 타고 이동하라"는 경호진의 권유를 물리치고,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1㎞가량의 대로를 걸어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한 측근은 "대로변을 다니는 시민과의 접촉 기회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후보 선출 전당대회 전날인 14일 아침엔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주변 산을 동행자 없이 1시간30분간 혼자 올랐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나 큰일을 앞두고 가끔씩 되풀이되는 정 후보만의 습관이지만 주변에서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라는 걱정도 듣는다.

정 후보는 양복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길 즐긴다. 토론회에 나와서도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리며 손을 아래 위로 흔드는 격정적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불붙은 표밭 경쟁=이 후보는 방송 정강정책 연설에서 "남을 헐뜯고 공작해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구태정치는 이제 정말 바뀌어야 한다"며 "아무리 면책특권이 있다 해도 근거없이 비방하고 음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관계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떤 지도자는 종교적 배제와 분열을 이야기하는 정신을 드러내 위험천만하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종교 편향정책을 시정할 것"이라고 이 후보를 겨냥했다.

서승욱.김경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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