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역사를 무서워하라" 梁熙錫 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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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즈음 우리 국민들이 너무 자기역사를 읽지 않습니다.설사 읽는다 해도 기존의 역사책들은 정치꾼들의 얘기위주로 돼 있어 자신을 돌아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그래서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사람들의 얘기를 바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진솔하게 엮어 보았습니다.』 원로 아나키스트 梁熙錫옹(86)이 그동안 자신의 경륜과 독특한 사회철학을 바탕으로 역사철학서『역사를 무서워하라』를 펴냈다.
대학을 정년퇴임한 뒤 고희를 넘긴 80년『사회과학』『예술철학』(3권)이란 力著를 저술하기도 했던 梁옹은 친지들로부터『그만한 사회철학의 안목으로 우리의 역사를 쓰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격려 겸 권유를 받아 10여년의 각고 끝에 이번에 책을 펴내게 됐다고 한다.
「공작정치와 저항운동」「역사를 무서워하라」「자주독립과 세계평화」등 3부(20장)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를 梁옹 자신의 역사관에 투영시켜 지금까지 왜곡됐다고 생각되는 중요사건을 의미별로 철저하게 정치를 탈색시킨 채 재해석,교육적인 효과를 도모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책을 쓰는 동안 역사의 무서움을 느꼈습니다.지금까지는 우리의 역사가 통치권자들에 의해 꾸려져온 것처럼 알려져 왔지요.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니 우리의 역사는 선비의 역사이며 자주독립운동의 주체 역시 선비와 무정부주의자였던 사실을 알 게됐습니다.
』 흔히 선비하면「남산골 샌님」정도로 소극적이고 避世的인 사람들로 여기기 쉽지만 이 나라 어느 고을을 둘러봐도 항상 그 중심에는 선비들이 자리잡고있어「사람덩어리」를 이뤘고 이 덩어리들의 움직임들이 모여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주 장이다.
梁옹은 젊은 날부터의 신조인「정치가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는아나키스트的인 생각을 밑에 깔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지만 매사를상대적으로 가늠하려는 자세답게 자기의 주장을「진리」라고 고집하지는 않는다.梁옹의 무정부주의란 일반인이 생각 하는 것처럼「정부타도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그가 믿고 생활의 신조로 삼아온무정부주의란『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만나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남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그래서 그는 본질적으로 정복욕에서 비롯되는 정치,또는이에 따른 정부를 제껴놓고는 일절 남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것을 무조건 내세우자는 게 아닙니다.우리 것을 정확하게 알고 남의 것을 아무 편견없이 견줄 때 진정으로 우리 것의장.단을 알 수 있고 그래야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겁니다.』 梁옹은 이 책을 쓰면서 우리의 문화가 오히려 유럽 또는 미국의문화보다 앞서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다.그 때문에 오늘날 백두산에서 제주도 끝까지 한가지 말,한가지 풍속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공동체를 만들어주고 또 이를 지켜준 선 조들의 공적에 내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진리일 수도 없고 유일무이한 것일 수도 없습니다.오직 선조들의 뼈아픈 체험을 살려 우리 생활의 교훈이되길 바랄 뿐입니다.』 서울 미동국교 4학년때 일본인선생앞에서『한국.중국.일본의 동양3국이 서로 협조해 잘 살아 야 한다』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던 일을 계기로 당시 아나키스트운동을 하던 선배들의 눈에 띄어 무정부주의자가 됐다는 梁옹은 해방후 대학강단을 거쳐 90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신조를 버리지않고 매주 수요일 옛 동지들과 만나「사람사랑하 기」를 얘기하며 자신을 다독인다.현재 상계동 허름한 아파트에서 부인.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梁옹은 이 책과 같은 기조로 곧 세계역사를 다룬『세계평화를 찾아』도 출간할 예정이다.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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