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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중간에 저녁식사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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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첼리스트 양성원씨(右)가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는 일요일인 다음달 4일 주변 음식점 10곳에 협조를 부탁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의 음식점들은 일요일에 보통 영업을 하지 않지만 이날은 문을 연다. 청중들이 음악회 중간에 밥을 먹고 와서 다시 듣는 ‘마라톤’ 연주회 때문이다.

 인터미션(중간 휴식과 식사)만 한 시간, 총 4시간이 걸리는 연주회는 첼리스트 양성원(40·연세대 교수)씨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 4일 오후 4시에 시작해 4시간동안 진행된다. 보통은 이틀에 나눠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양씨는 “베토벤의 모든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만큼 청중들을 위해 저녁식사 시간까지 포함했다. 음악을 소화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사까지 하고와야 할 만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는 청중은 물론 연주자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이 소나타 5개는 첼리스트들이 넘고자 하는 거대한 산맥과 같다. 이전 시기의 작곡가들이 아름다움과 정제된 소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베토벤은 불쾌함과 추함까지도 음악으로 표현했다. 연주자로서는 그만큼 익숙해지기 힘들고 음악적 소화 역시 만만치 않다.

 양씨가 처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한 것은 20여년 전 미국 인디애나 음대의 학생이던 시절. 3번째 소나타를 연주했던 그는 “기둥이 없어진 건물을 맨손으로 떠받드는 기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손가락 잘 돌아가고 소리도 우렁차던 20대에 이렇게 어려운 곡을 만나 당황스러웠던 것도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베토벤 작품이 이처럼 어려웠던 이유는 “멜로디가 들리게 연주해야할 뿐 아니라 음악의 구조를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의 고통과 인간미를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며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도 말했다.

 전곡 연주는 양씨의 끝나지 않는 과제다. 그는 2년 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전곡을 녹음·연주했다. 당시에는 총 6곡을 이틀로 나눠 연주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길을 찾아가는 그의 음악 또한 진지하고 깊다는 평을 듣는다.

 산맥 하나를 넘은 첼리스트의 다음 행보도 관심을 끈다. 그는 “전곡 연주를 할 때마다 이론이 아닌 마음으로 음악을 이해하게 된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번 연주가 끝나면 또 도전과제가 생각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는 이번 연주에 앞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을 내놨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등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프랑스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의 터치에 힘입어 생생한 감정이 살아난다. 앨범의 표지는 소나무·바다·바위 등의 역동성을 사진에 담아온 작가 배병우의 작품으로 결정했다. 양씨는 “배병우의 소나무를 볼 때마다 베토벤의 편지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서신과 메모를 많이 남겼다. 꿈틀대는 배병우의 소나무가 베토벤의 소리 없는 대화와 닮아있다는 설명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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