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까짓 것 깨 보자… 5인의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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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운을 부른다는 징크스는 과연 사람 힘으로 어쩌지 못할 주술적 힘을 가진 것일까. 이를 깰 수는 없을까. week&은 프로게이머 이윤열(21) 선수 등 다섯명을 부추겨(?) 개인적 징크스에 도전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험 대상자들에게 폐를 많이 끼쳤다. 대부분이 "괜히 징크스 깨려다 안 좋은 일을 겪었다"고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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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머 이윤열, 손톱을 깎다

지난 1월 31일 오후 1시50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네오위즈 피망컵 스타리그 단체전이 열리기 10분을 앞두고 스타크래프트 랭킹 1위 이윤열(21) 선수가 손톱을 깎았다. 상대는 랭킹 15위인 한빛스타스 소속 나도현(22) 선수다.

이 선수가 시합 당일에 손톱을 깎기는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초 손톱 깎는 것을 보고 팀의 선배가 "그러면 진다"고 한 것을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실제로 진 적이 있다. 그 뒤로 큰 시합을 하는 날에는 손톱을 깎지 않았다. 이 선수는 "랭킹도 꽤 차이가 나 이길 자신이 있고 징크스도 깨고 싶어 손톱을 깎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작하자마자 공격 군단을 키운 이 선수는 이내 기습에 들어갔으나 그만 전멸하다시피 했다. 결과는 패배. 이 선수는 "손톱과는 상관 없이 전략 실수로 진 것"이라면서도 "다음부터는 손톱을 깎지 않겠다"고 말했다.

*** 장성민 前의원, 넥타이 색 바꾸다

민주당 장성민(41) 청년위원장은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갑 전 대표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과거 민주당 경선에 나선 모든 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빨간 넥타이를 버리고 연한 보랏빛 넥타이에 구두도 끝이 뭉툭한 것을 신었다.

사흘 전부터 성명을 준비했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한화갑 전 대표 구속 논란이 벌어지고, 김홍일 의원이 민주당으로 복당해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해 말 "민주당의 호남 출마 인사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할 때 기자들이 북적거렸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장전의원은 "징크스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며 "정치인은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말로 다음부터 빨간 넥타이를 고수할 뜻을 나타냈다.

*** 기업 간부, 출근 때 한강 물 보다

인터넷 벤처의 B팀장(31.남)은 경기도 일산(고양시)의 집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근한다. 지난 2일 그는 출근길 지하철 3호선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철교 위를 지날 때 특유의 가벼운 덜컹거림이 전해오자 눈을 떴다. 그러나 1초도 못돼 도로 눈을 감았다. 그는 "징크스 깨기에 도전하면서도 전철이 한강을 건널 동안 계속 강물을 쳐다보기가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B팀장은 예정에 없던 올해 연봉 확정 통보를 받았다. 경력직으로 옮겨온 지 1년이 안 된 경우는 동결키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을 잘한 것은 인정하지만 기준을 그렇게 정해 어쩔 수 없다더라"면서 "징크스가 작용한 모양"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앞으로 출근길에서 지하철이 동호대교를 지날 때 눈을 뜨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회사원, 계단서 왼발부터 딛다

증권사 대리 K씨(31.남)는 지난 2일 의식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때 왼발부터 디뎠다. 징크스와는 달리 계단에서 다치지도 않았고, 상사에게 결재도 잘 받아냈다.

징크스가 깨진 걸까. 아니었다. 앞으로도 중요한 기안 등을 제출할 때는 꼭 오른발부터 내딛겠다고 한다. 징크스의 중요한 요인인 심리적 부담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징크스 깨기를 한 뒤 곰곰 생각해 보니 평상시에는 왼발.오른발에 크게 신경쓰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중요한 결재서류 등을 들고 갈 때만 오른발이 먼저였을 뿐. 오늘은 잘 지나갔지만 앞으로도 내가 기획한 주요 문건을 들고 다닐 때는 징크스를 깨지 않을 것이다."

*** 악운 부르는 진주 목걸이를 걸다

증권사 직원 J씨(27.여)는 올들어 1주일에 한번쯤 징크스의 원인이 된 진주목걸이를 하고 나간다. "큰 마음 먹고 샀는데 징크스 때문에 서랍 속에만 모셔두기에는 아까워서"스스로 징크스 깨기를 시도하는 것.

처음 차고 나온 날은 몹시 긴장했으나 별 탈 없었다. 그러나 다음번에 착용했을 때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J씨는 "역시 징크스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계속 착용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에도 목걸이는 이렇다 할 악운을 부르지 않았다. J씨는 "징크스가 거의 가신 것 같다"고 했다.

◆ 실험자 다섯명 중 셋은 징크스를 무시한 날 뜻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또 다른 한명은 별 일이 없었으나 징크스를 깰 마음은 없다고 했다. 고려대 김성일(교육심리) 교수는 "살다보면 하루에 한번쯤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보통이지만, 징크스를 가진 사람은 그 원인을 징크스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징크스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괜히 징크스를 깨려다 나쁜 일에 맞닥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아예 징크스를 깨려 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그러나 징크스 깨기를 오래 계속하면서 그날그날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통계를 내보면 징크스는 거의 다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권혁주.김필규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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