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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실로 다가오는 유가 100달러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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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석유 공급이 달리는 데다 미국 달러가 약세여서 유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가 100달러 시대’라는 악몽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100달러는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하더라도 2차 오일쇼크 때의 가격을 넘어서는 것이다. 에너지 전문기관들은 세계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배럴당 95달러로 보고 있다. 전 세계는 위기감이 감돌고,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기름이 나지 않는 우리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2%포인트 뛰고,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떨어진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년 만에 3%대에 올라설 전망이고, 5% 성장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이것도 추정일 뿐 충격이 얼마나 커질지 예측불허다.

 사정이 긴박한데도 정부는 위기감이 없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유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유가가 30달러대였던 4~5년 전만 해도 가격대별 비상계획을 마련하는 등 분주했는데, 요새는 그런 움직임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도 정부는 “세수만 줄어든다”고 반대하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유류세 인하의 논리가 없다”고 답변했다. 기름값의 60%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유류세 때문에 국민이 받는 고통은 관심 밖이라는 태도다.

 이제라도 에너지 정책을 다시 점검하고, 각 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비상조치를 준비하기 바란다. 유류세를 인하해 국민의 짐을 덜어주고, 자원 확보와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도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고, 기업도 에너지 고효율 제품을 개발하는 등 경쟁력을 높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자세다. 유가가 오른다고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되겠지만, 위기가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채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정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