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 IN-CAR문명] 차 매뉴얼 ‘열공’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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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매주 두세 번은 지인들에게서 자동차의 기능이나 사용법을 다급히 묻는 전화를 받습니다. 요즘 같은 가을철 비 오는 날엔 이런 질문이 있네요. “에어컨을 틀면 춥고, 놔두면 꿉꿉한데 어떻게 습기를 제거하면 좋을까.” 방법은 간단해요. 온도를 높이고 에어컨을 틀면 습기만 제거할 수 있지요. 질문은 다양합니다. “후진을 하면 사이드 미러가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 기능을 멈추고 싶다.” “다른 사람 차는 자동차 키를 뽑으면 운전대가 들어가고, 시트가 뒤로 밀리는데 왜 같은 차종인 내 차는 안 되느냐.”

 이처럼 자기 차의 기능을 다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엄청난 개발비를 들여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자동차 안에 숨겨 놓습니다. 그런데 차 주인들이 그런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지요. 아마 차를 바꿀 때까지 그 기능 중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많을 거예요. 참 아까운 일입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남의 차 기능까지 다 꿰고 있느냐고요? 학원에 다녔거나 과외를 받은 일은 없어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죠. 다만 저는 차를 새로 사면 매뉴얼을 거의 달달 외울 때까지 봅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보다 더 열성적으로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읽고 보며 기능들을 익힙니다. 이는 새로 나온 신시사이저(흔히 키보드라고 부르는 악기)의 기능을 빨리 알아내야만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었던 1990년대 초반 이후 이어 온 직업적 습성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매뉴얼 ‘독서열’ 덕분에 자동차의 기능을 남들보다 잘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지인들에게 “차를 살 때 달려 온 매뉴얼을 집 안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어 보라”고 권합니다. 이렇게 매뉴얼을 읽으면 의외의 소득도 있습니다. 일단 내 차에 눈이 떠지고 다음은 기술의 흐름이 보입니다. 더 중요한 건 자동차 옵션에 흥미가 생기는 것이죠. 요즘처럼 수입차가 넘치는 때엔 옵션을 모르면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차들은 너무 비싸죠. 그런데 국내 수입용 차들이 최고의 옵션을 장착해 비싼 것이지 가격 거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수입차 업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제가 보기엔 무리가 있는 논리 같아요. 가령 수입 차 가운데 고가의 대형 세단에는 고속도로 주행 시 앞차와의 거리가 일정 간격 이하로 붙으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안전과 직결되는 유용한 옵션이지만 이 기능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옵션은 앞차와의 거리를 레이더가 전파를 쏘아 알아내는데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부 전파법의 저촉을 받아 이런 전파를 쓸 수가 없어 도입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런 기능 중 빠지는 것이 많은데 옵션이 많이 들어가 비싸다고 업체가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이런 것을 간파하려면 많이 알아야 합니다. 차를 산 뒤 매뉴얼은 물론이고 차를 사기 전에 팸플릿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화려한 사진과 함께 수많은 첨단 기술을 자랑해 놓고 작은 글씨로 ‘국내에 적용하지 않는 사양’이라고 표시해 놓은 것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첫걸음은 제품에 관한 유인물을 열심히 읽어 보는 ‘독서’ 습관입니다.

남궁연 SBS 고릴라디오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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