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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방 진료 영역다툼 느는데…정부 '교통정리' 팔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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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의사가 한약제제를 처방하고 한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등 양.한방 진료의 영역을 넘나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새로운 질병이 생기고 기존 의술로 치료가 안되는 병이 나타나는 데다 환자들의 서비스 수준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는데도 잘못 손댔다가는 '의(醫).한(韓)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며 주요 현안에 대해 교통정리를 미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료 영역 파괴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환자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혼란 가중=일부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은 초음파나 컴퓨터 단층촬영(CT).방사선 촬영 등을 질병 진단에 활용하고 있다. 이 검사들은 지금까지는 의사들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방사선과 의사 등이 한방병원 안에 개업해 협진(協診)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의사가 검사기기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방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하도록 한 의료법(면허 범위)을 위반한 것이다.

한의사협회는 2000년 7월 초음파.청력.맥파 전달시간.경근생기능.혈액 등의 검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답을 미루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01년 9월 울산시의 한 의사가 한약제제인 맥문동탕(감기.기관지염에 쓰는 한약제)을 처방한 사실이 적발됐다. 복지부는 최근에야 "의사의 면허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해석해 위법사항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조치를 내렸다.

어느 쪽의 영역인지 모호한 사례도 있다. 침이나 침과 비슷하게 생긴 바늘로 근육이나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IMS와 IMNS)가 대표적인 예다. 2000년 말 재활의학과 의사 등이 보험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 뒤 한의사들이 "침을 이용한 치료는 우리 영역"이라고 반발하자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사용해온 추나요법과 비슷한 시술인 카이로프랙틱이나 수(手) 치료는 올해부터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등에 한해 보험이 인정됐다. 추나요법은 손으로 뼈를 맞추거나 근육을 풀어주는 의료행위다.

◇문제는 없나=현행 의료법이나 약사법은 의사나 한의사의 상대 진료 영역에 대해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사람이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모두 갖고 있을 경우 한 쪽만 사용하도록 돼 있다. 영역 파괴라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사가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를 지도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간호조무사 등에게 맡겼다가 최근 전북 지역의 한의사 8명이 사법처리되고 두달간 의사면허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93년 한약(韓藥) 분쟁이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시작됐지 않느냐"면서 "올해 상반기 안에 양쪽이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논의할 예정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겹친 부분이 어느 쪽 영역으로 정리되든 환자의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교차 현상'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소위 '밥그릇'을 나누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병을 잘 낫게 하고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영역이 겹치는 부분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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