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을가다>2.강화 燕尾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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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해 唜島(말도)앞바다에서 시작되는 휴전선의 첫 상륙지는 강화군양사면철산리다.철산리를 한쪽 끝으로 해 동쪽으로 강화읍 월곶리,염하(鹽河.강화대교로 연결됨)를 건너 김포군월곶면조강리에이르는 지역은 발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한강이 곧 비무장지대인지라 북을 향한 시야에 거칠 것이 없다.
소리높여 부르면 저쪽에서 금방이라도 대답이 올듯한 거리다.
여의도와 마포사이나 될까.그러나 강 건너편엔 「주체조선」이란대형 입간판과「친미매국」「무료교육」「반전반핵」등 선전간판이 들쭉날쭉 서있어 북녘땅임을 한눈에 알수 있다.바로 개풍군해창리다. 「반전반핵」은「월북환영」이라는 선전판 대신 3년전쯤 세운 것이라고 안내하던 해병이 설명한다.우리도「오라 따뜻한 남쪽 나라로」라고 썼던 것을 올해부터「군복무 2년」이라고 바꾸었단다.
북한병사의 복무기간이 10년임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남북이 비슷한 시기에 서로 직설적인 표현을 수정했다는 점에서시대의 변화에 따라 양쪽의 대결 양상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北-美회담 결과 평양에 美國 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는데 저같은 자극적인 反美 선전간판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다.
강화.김포지역 앞의 분단선은 한강물길 한 가운데.물론 철조망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철산리 관측소에서 해창리를 포대경으로 관찰하니 태풍 뒤의 도로정비 작업을 하는지 웃통을 벗고 흰 작업복 바지등을 입은 인민군 10여명이 삽을 든채 줄지어 이동하는가 하면 3~4명은 한곳에서 흙을 파고 있다.
노란색.자주색의 원색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와 꼬마들도 활발하게 움직여 인민군만 아니면 그냥 우리네 시골 외갓집 동네를 보는듯 하다.
전쟁전 이곳에는 남북을 잇는 길이 일반도로와 철길.뱃길등 세갈래로 나있었다고 한다.
그중 한강을 통해 남북이 오가던 곳은 강화도 철산리~개풍군 해창리나루 뱃길과 김포 조강리~개풍군 조강포 뱃길 두군데.
두 뱃길을 통해 그 시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을까. 철산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아침에 장사일보러 해창리에서 배를 타고 건너 왔다가 다음날 오후 사공이 없어 못들어 간 그때부터 이산가족이 됐다고 했다.3㎞쯤 떨어진 해창리엔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아직도 살고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 어 그 노인의 마음속엔 40여년의 세월이 정지돼 있는것 같았다.수십년이지나 돌아와 보니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는 아내가 색동저고리에 족두리 하고 혼례 올릴 때의 젊은 모습 그대로 있어 손을 어깨에 대는 순간 재로 변해 스러지더라는 徐廷柱시인의『질마재신화』가 생각나 몸서리쳐진다.
민간인 통행이 통제되고 있는 철산리와 조강리 중간지점의 강화월곶리는 산.강.섬.새와 나무.정자가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루고있다. 야트막한 숲속 언덕에 燕尾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좌우엔 높이 30여m,직경 10m쯤의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정자를 지키듯 하늘을 가렸다.이 정자는 1244년(高麗 高宗31년)학생들의 면학을 위해 왕명으로 건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仁祖 5년 정묘호란때 오랑캐와 강화조약을 맺은 곳이라는 부끄러운역사의 현장이다.
정자는 장방형 주춧돌위에 앞뒤쪽 각각 4개,옆쪽 1개씩 모두10개의 기둥이 아래쪽 3분의2가 화강암이고 위쪽은 육송인 독특한 형태.지붕머리선과 처마선 사이의 거리는 짧게해 하부 견고함과 상부 날렵함의 조화를 한눈에 알 수있다.
조선조 이래 외적의 바닷길 침입때마다 든든한 주춧돌에 의지해대포를 세우는 포대로도 활용됐다니 견고하고 날렵한 건축미에는 전략적인 고려도 있었으리라.
정자 앞쪽에는 북한의 야산들이 좌우로 늘어서있고 기름진 평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사이로 임진강과 합수한 한강물이 여유롭게 흘러 풍광이 여간 아름답지 않다.
이곳 江華는 13세기 몽고족과의 결전을 위해 고려 집권자 崔瑀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요새화한 때부터 19세기말 병인.신미양요를 거쳐 1876년 일본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기까지 우리민족을 지켜온 해상전략의 요충지가 아니었던가.
오늘날 이곳의 전략적 효용이 동족이 아닌 다른 「적」을 상대로 빛을 내고 있다면 對蒙항쟁을 벌였던 삼별초 선조앞에 좀더 떳떳이 고개를 들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다.
글 全榮基기자 사진 이지누(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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