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회담손익계산-현재.미래 북핵 동결에 치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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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네바에서 열린 北-美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주로 북한의 현재와 미래 핵활동을 동결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큰틀에 일단 합의했다.
북한이 흑연감속로 동결과 폐연료봉의 非재처리를 약속하는 대신미국은 그 대가로 경수로 지원과 전력난 해소를 약속한 것이다.
지난해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한 이후지루하게 계속돼온 북한핵협상에서 양측이 이 정도나마 핵문제 해결방안에 합의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당초 북한핵문제 협상이 처음 시작됐을 때제기됐던 북한의 과거 핵개발활동에 대한 투명성확보 방법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당초 미국이 목표로 삼았던 북한핵 의혹해소에는 근접조차 못한 잠정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다만 北-美간 실질적 내용을 갖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핵의혹 해소문제등 남은 난제들도 협상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가능하다.
또한 이번 합의는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포함되지 않은 총론적이고 원칙적인 합의라 할 수 있다.이는 구체적 이행방안을 마련하는데 있어 양측의 견해차가 심해 합의를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양측이 수석대 표가 참가하는 전체회담을 10일로 일단 끝낸 것이 큰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의미한다면 실무급 회담을 11일 속개한 것은 바로 이같은 구체적 이행방안에 대한 합의 절차가 아직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견해차가 가장 심하게 드러난 부문은 폐연료봉 처리문제와 경수로 지원방식.
북한은「국제사회가 안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폐연료봉에 대한건조식 보관을 제시했으나 과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북한이 주권을 내세워 폐연료봉의 제3국 이전에 결사적으로 반대 하고 있는 이상 미국 으로서는 북한이 제시한 방식이라도 받아들이는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그러나 북한이 일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는다고 약속함에 따라 건조식 보관의 구체적 방안은 추후논의하되 일단 냉각수조 보관 기한을 연장하는 것을 지원할 기술진을 파견하는데 서로가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11일 실무회담에서는 기술진 파견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수로 전환문제에 대해 미국은 경수로 지원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경수로 건설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나라가 실질적으로 韓國뿐이므로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북한은경수로 건설이 최소한 8년이상의 오랜 기간이 걸 리는 일이며 그기간중 남북한관계가 경색돼 한국이 경수로 건설을 중단할 가능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미국은 경수로 지원을 약속하는 당사자로서 경수로 건설이 중단될 가능성이 없도록 보장한다는 논리로 국제컨소시엄을통해 한국형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설득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북한측의 확답을 받아 낸 상태는 아니다. 이번에 양측이 합의하지 못한 사항들은 특별사찰과 한반도非핵화선언의 이행문제,北-美간 관계개선 문제등이다.특히 미국은특별사찰을 통한 과거 핵투명성 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회담초기부터 양측간의 의견차가 심하게 드러남으로써 주 논의대상에서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나타난 회담 결과를 두고 볼때 미국은 북한이 연료봉을 인출함으로써 카드化한 폐연료봉의 非재처리 약속을 이끌어내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협상에 임했다는 인상이 짙다.이는 미국의 북한핵정책이 최근 북한의 과거 핵의혹 해소보다 는 우선 현재와 미래의 핵활동 동결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초보적이고 잠정적이라는 점에서,북한핵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기까지 앞으로 양측이 넘어야할 고비가 수없이 많다는 점에서 미국이 과거 핵의혹 해소에는 관심을 잃어가고있다는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번 합의에 대한 평가는 양측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테이블에마주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이래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일정한정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의미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高大勳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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