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70. 문제된 겸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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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KAIST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때인 1980년대 연구실에서 필자(오른쪽에서 둘째)가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천성순 원장님 귀하. 귀 대학에 조장희 교수가 근무하고 있습니까? 사실이면 연봉은 얼마나 받고 있습니까?“

 1990년대 초 어느 날 UC얼바인 의대 학장이 보낸 이 같은 내용의 편지가 KAIST 원장실로 날아들었다. 내가 두 대학에서 정교수로 겸직하고 있는 것이 UC얼바인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UC얼바인에서 나와 경쟁 관계에 있던 A교수가 조장희 교수를 조사해야 한다고 학장에게 강력히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린 A교수는 내가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다.

 문제의 발단은 한국인 유학생 B에게서 비롯됐다. B는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학생이다. 어느 날 그가 날 찾아와 미국 유학을 가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UC얼바인의 내 연구실에 석사과정 학생으로 받았다. 장학금까지 주며 공부를 시켰는데도 그의 학업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시키는 연구 과제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가 석사과정을 끝냈을 때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더니 박사과정을 해야겠다며 A교수 밑으로 들어갔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B는 A교수에게 KAIST에서 내가 정교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했다. 그러자 A교수가 UC얼바인 대학당국에 그런 사실이 있는지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KAIST에서 정교수 연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1985년 UC얼바인으로 옮겼을 때 KAIST 연봉이 1만 달러도 안 돼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 UC얼바인은 어느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고 다른 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 거기서 받는 연봉만큼을 UC얼바인 연봉에서 공제했다. 말하자면 겸직은 가능하되 일정액 이상의 연봉을 UC얼바인 외 다른 대학에서 받지 말라는 방침이 있었다.

 UC얼바인으로 막 옮겼을 당시에는 신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KAIST 연봉이 서서히 올라 2만 달러 정도가 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겸직 문제가 불거지자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나를 밀어내려는 A교수의 공작이 시작됐는데 어찌하겠는가.

 있는 사실 그대로를 UC얼바인 측에 공개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결국 UC얼바인은 내 연봉에서 KAIST 연봉을 공제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문제는 연구를 제외하고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사건이었다. 잘못하면 얼마 안 되는 KAIST 연봉을 더 벌려고 UC얼바인을 속이려고 한 부도덕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부주의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지만 자칫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었던 ‘미신고 겸직’이 그 사건 이후 ‘신고된 겸직’으로 깨끗이 정리됐다. 그 뒤에도 나는 KAIST와 UC얼바인을 오가며 연구를 계속했다.

 내 겸직 문제를 제기했던 A교수는 지금도 UC얼바인에 재직하고 있으며, B는 중년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일이 잘 풀리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에게 힘이 돼준 사람을 해치려고 하면 자신도 결코 잘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들에게서도 본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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