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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는 기본, 행동·진술 분석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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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심리분석실에서 피의자 한 명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고 있다. 가슴과 배 등에 붙은 센서를 통해 포착된 생리변화는 컴퓨터 모니터에 몇 개의 그래프로 그려진다. 신동연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심리분석실. 한 피의자가 가슴과 배, 손가락, 이두박근에 센서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뇌파 검사를 위해 두피에도 센서를 붙였다.
“당신이 돈을 훔쳤습니까?”
“아니요.”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 컴퓨터 모니터에는 그래프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분석관의 눈빛이 반짝인다. 거짓이 밝혀진 걸까. 피의자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거짓말탐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확도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정재영 심리분석실장에게 “실험 삼아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청했다. 정 실장은 대뜸 “100만원 내기를 하자”고 했다. “구체적인 불이익이 있어야 거짓·진실 반응이 나옵니다. 그냥 재미로, 장난 삼아 하면 심적인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응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요.”

만약 양쪽 당사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를 해서 한쪽은 ‘거짓’, 반대쪽은 ‘진실’ 반응이 나올 경우 정확도는 99%를 넘는다는 설명이다. 피의자와의 ‘진실게임’에서 이기려면, 고도의 전략과 노하우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질문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성폭행 사건의 경우 따귀를 때렸느냐, 옷을 찢었느냐 등의 세부적이고 분명한 사실관계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재판부에서는 거짓말탐지 결과를 법정 증거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황 증거로 받아들인다. 거짓말탐지기에서 유죄로 나타났을 경우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는 확률은 94%에 달한다는 게 정 실장의 설명이다.

검찰의 심리분석에는 첨단 행동·진술분석 기법까지 동원된다. 이른바 ‘통합심리분석 시스템’이다. 지난해 1월 분석실에 의뢰된 창원 독극물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30대 여성 A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초등학교 2학년생 딸에게 독극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A씨는 필사적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결정적 물증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 단계에서 거짓말탐지기와 뇌파 조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했다. 심리분석실은 A씨를 상대로 정밀 행동분석에 들어갔다. 김재홍 분석관과 문답을 주고받는 A씨 앞에는 고성능 카메라 6대가 놓여 있었다.

본격적인 분석은 A씨가 돌아가고 난 다음 시작됐다. 1초에 30프레임꼴로 찍힌 수십만 장의 스틸 사진을 차례로 넘겨가며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표정을 잡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A씨의 표정에는 딸에 대한 슬픔이나 범인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 분석관의 물음에 경멸하듯 미소 짓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 분석관은 ‘A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창원지검에 보냈다.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람의 얼굴은 수천 개의 미세근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근육 중에는 의식으로 통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반면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이른바 ‘불수의근’도 있어요. 0.25초의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나는 미세 표정을 통해 인간의 온갖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진술분석은 용의자나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을 따져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기법이다. 김미영 분석관은 “진술 내용을 단어, 어절, 문장으로 쪼개 통계를 내보면 진술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숨기고 싶어하는지 밝혀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용의자들은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타인’ 혹은 ‘다른 사람’으로 애매모호하게 지칭하곤 한다. 또 사건 순간보다 사건 현장까지 가게 된 경위를 더 자세하게 진술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실에 가까운 진술의 경우 소리나 냄새, 느낌 같은 오감(五感) 정보가 들어가는 등 구체적인 데 반해 꾸며낸 이야기는 추상적이다. 결국 심리분석도 “남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 땐 두려움 탓 생리변화 단전호흡 등으로 감출 수 없어

0.25초 동안 스치는 미세 표정 통해 ‘감춰진 감정’ 잡아내

거짓말탐지기의 원리와 절차

수사단계에서는 물적 증거보다 범죄자의 자백과 목격자 진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종결을 위해선 사람의 말로 구성된 증거, 즉 구술(口述)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수사의 성패는 이처럼 물적 증거뿐만 아니라 구술 증거 확보의 신뢰성과 타당성에 좌우된다. 구술 증거를 분석하는 대표적인 기구가 거짓말탐지기다. 호흡 패턴과 땀 분비의 양, 맥박, 혈압 등 여러 개의 생리학적 변화가 측정되면서 다수의 그래프로 나타난다.

거짓말 판독의 기준은 어떤 종류의 질문에 얼마만큼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가다. 즉, 일정한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른 종류의 질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생리적 반응을 나타내면 거짓말로 판단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 발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교감신경계가 작동하고 일정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다.

검사 절차는 보통 사전면담, 실제검사, 차트 분석, 사후면담 순으로 진행된다. 사전면담에서는 우선 피검사자와의 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사람은 검사를 할 수 없다. 전날 수면을 취하지 않았거나 과음한 사람도 부적격자이다.

실제검사는 몇 가지 질문 종류를 혼용하여 3회에 걸쳐 실시한다. 5분씩 15분 정도 소요된다. 사후면담에서는 차트 분석에서 나타난 결과를 피검사자에게 알려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사건 초기에 신고자·피의자·목격자·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숨겨진 증거를 찾고 추가적인 수사단서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일정한 한계도 있다. 피검사자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사실까지 탐지하지는 못한다. 실제로는 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이었지만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성폭행을 했다고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진실반응으로 나온다.

‘나 같으면 그깟 거짓말탐지기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어떻게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유료 웹사이트도 있다. 보통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신발 안에 압정을 미리 넣고, 답변할 때 눌러서 그 통증으로 정상적 생리반응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성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상상하거나 비정상적인 호흡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우는 장면도 종종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래프가 특이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검사관이 검사를 중지하고 왜곡행위를 못하게 한다.

필자도 얼마 전 왜곡행위를 시도하는 사람을 검사한 적이 있었다. 호흡 패턴과 땀샘 분비가 극히 비정상적이었다. 검사를 중단하고 “속일 것이 없다면 왜곡행위를 하지 마라”고 권고했다. 다시 검사를 시작했지만 또다시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계속 거짓말탐지기와 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몇 번의 권고 끝에 그는 결국 실토했다. 사실 자신의 직업은 단전호흡 수련원의 원장이고 ‘기를 돌리는’ 방법으로 거짓말탐지기를 통과하고 싶었다고. 결국 다시 정상적인 상태에서 검사를 재개한 후 진술의 허위 여부 판독이 가능해졌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행정학과)

권석천 기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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