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避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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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避暑라는 말은 2천년 전 班固가 사용했다.요즘처럼 무척 더웠는지 扇詩라고 하는 부채를 주제로 한 시에서 언급했다.예나 지금이나 평민의 避暑法은 부채였나 보다.
그러나 천자의 경우는 좀 달랐다.청나라 康熙와 乾隆은 아예 避暑를 목적으로 別宮을 지었다.熱河(현재의 河北 承德市 북방)에 근 2백만평의 면적에다 무려 88년동안 도합 1백10동의 건물을 지어「避暑山莊」이라고 했다.避暑치고는 전대 미문의 스케일에다 山莊 역시 세계최대의 규모가 아닐까 싶다.이곳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어 燕巖 朴趾源의 『熱河日記』는 여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하지만 避暑라는 말 자체에는 소극적인 의미가 들어있다.그저 그늘을 찾거나 부채를 부치든지 등목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게다가 우리나라는 엄격한 유교예법 때문에 남녀를 막론하고쉽게 몸을 내놓고 씻지도 못했다.그래서 계곡을 찾더라도 발을 담그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것을 濯足(탁족)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빙과류를 먹거나 에어컨을 사용하여 더위를 쫓는다면 그것은 避暑가 아니라 더위를 물리치는 斥暑(척서)다.적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온가족이 해수욕장을 찾는 방법도 있겠다.역시 避暑의 한 방법이 되겠지만 避暑地의 분위기는 오히려 더위와 짜증만 가중시킨다.그렇다면 그것은 迎暑(더위를 맞이함)가 아닐까.차라리 집에서 쉬는 것이 진정한 避暑가 아닐는지.
鄭 錫 元 〈한양大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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