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초세법 만든 장본인들-문희갑씨 與반대속에 강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모든 정책에는 正의 효과와 負의 효과라는 상반된 양면성이 있고 또 그 정책을 입안한「장본인」이 있다.
토초세처럼 논란이 많은 정책일수록 입안 단계는 냉정한 판단과합리적인 가늠보다 이른바 여론을 등에 업은 경직된 상황 논리에휩쓸리기 쉬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憲裁의 결정에서 보듯 정책의 공과에 대한 훗날의판단은 「입안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이번 토초세 파문을 계기로「정책의 실명제」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새삼 나오고 있는 것도,이제 잘못된 정책이나 장본인들을 단순한「상황의 産物」로 돌리고 마는 愚를 우리 모두가 다시 반복해서 범하면 안되겠다는 반성 때문이다.
토초세등 토지공개념의 산파역으로 문희갑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당시 민정당과 기업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했으나 개혁을 놓지면 혁명이 온다고 여론을 잡아나갔다.
민정당에서는 서상목정책조정실장이 대표주자로 나서 文수석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박철언 당시 정무장관도 토지공개념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켜 혁명의 불씨를 만든다고 文씨를 비난했다.
文씨는 89년 9월5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정당 당직자회의에서 대통령 앞에서 徐실장.朴장관등과 격력한 논쟁을 벌인 끝에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했다.
文씨가 지휘자라면 각 부처에서 나름대로 실무작업을 맡았던 연주자들로는 이규성재무장관,이규황 건설부 토지국장,한이헌 기획원기획국장,이근영 재무부 세졔국장,윤한도 내무부 지방세제국장등이있다.
이 가운데 이규황토지국장은 88년 4월 토지소유상한제.개발이익환수제.등기의 무제.과표현실환등의 제도를 토지정책의 운용과 과제라는 보고서로 묶어 최동섭장관과 이현재총리에게 보고하는등 일찍부터 공개념제도를 실무적으로 추진한 장본인이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토초세를 구상하지는 않았다.애초에는 개발지역에는 개발부담금을,그 주변지역에는 개발이익환수금을 각각 부과하려했다.
그러나 기획원.재무부가 건설부의 案이 과장금의 성격을 지닐 정도로 가혹한데 실현되지도 않은 가상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것은 위헌 우려마저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재무부.기획원은 과표현실화를 통한 종토세 제도에 큰 비중을 두려 했으나 이춘구내무장관,김영진내무차관등 내무부 당국자들의 반대에 밀려 어려워지게 됐다.
결국 기획원과 건설부가 재무부에 아이디어를 구하자 이규성재무장관은 건설부에 맡기느니 차라리 재무부가 하자며 이근영 세제국장에게 제도마련을 지시,결국 토초세 제도가 나오게 됐다.

<남윤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