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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가득한 조선남종화의 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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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촉잔도권(燭棧圖圈) 중간 부분, 지본담채, 전 818.0×58.0cm

만폭동(萬瀑洞), 지본담채, 19.3×28.4cm

1년에 딱 두 번 열리는 보물창고의 개방이 임박했다. 고미술 매니어들 사이에선 봄·가을 간송미술관 전시를 보고 나면 한 해가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 탄신 300주년을 맞아 ‘현재화파전’(畵派展)을 마련했다.

조선 남종화(南宗畵)의 시조인 현재는 조선 후기 사대부 출신의 대표적 화가인 ‘사인삼재(士人三齋)’로 꼽힌다. ‘삼재’의 나머지 두 사람은 진경산수화의 시조 겸재(謙齋) 정선(1676-1759), 조선풍속화의 시조 관아재(觀我齋) 조영석(1686-1761)이다.

현재는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조부 심익창으로 인해 출세길이 막히자 어린 시절 겸재 밑에서 서화를 익혔다. 그림 그리기는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사대부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가 10대 때 겸재가 지방관으로 파견되면서 스승과 이별하게 된다. 이후 그는 중국 화보를 임모(臨摸·그대로 베낌)하고 또 임모했다. 양자강 하류의 고온다습한 풍토를 반영해 선묘보다 습윤한 먹의 번짐을 즐겨 사용한 중국 남종문인화를 현재는 이렇게 해서 그대로 이어받았다.

먹의 번짐에 꼿꼿한 골기(骨氣)가 들기 시작한 계기는 47세 때 금강산으로 떠난 첫 사생여행이었다. 금강산도의 대가인 겸재는 사계가 뚜렷하고 지형이 굳센 우리 산하를 나타내기 위해 필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현재는 금강산을 사생하며 겸재의 필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실장은 ‘만폭동도’(사진下)를 꼽아 “먹의 번짐 속에 강한 골기를 담아 남종 화풍을 조선화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현재가 죽기 한 해 전인 1768년 그린 ‘촉잔도권’(燭棧圖圈·사진上)도 나온다. 길이 818cm, 폭 58cm의 두루마리 산수화로 조선미술사상 가장 큰 그림이다. 중국 쓰촨(泗川·촉나라)성으로 들어가는 300리길 비경의 상상도다. ‘촉나라로 가는 길목의 험난함이야말로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는 이백의 시를 떠올리며 인생의 굴곡진 여정을 화폭에 녹인 예순한살 노화가의 내공이 우러나오는 작품이다.

최 실장은 “촉잔도권은 당대 미술의 12준법이 모두 다 들어있는 현재 평생의 역작이자 조선남종화의 최고봉”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그림에 대해선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전형필 선생이 1936년 당시 큰 기와집 다섯 채 값인 5000원을 주고 구입한 뒤 다시 6000원을 들여 손상된 부분을 복원 수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시에는 소장품 중 현재의 주요 작품 50여점을 비롯해 그에게 영향을 받은 원교 이광사,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등 당대 화가들의 작품 총 100여점이 나온다. 현재의 작품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작들이 망라돼 조선 남종화의 탄생과 당대에 미친 영향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다. 공짜 눈 호사는 14일부터 28일까지 딱 2주간만 허락된다. 02-762-044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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