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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귀순 강명도.조명철씨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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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귀순 동기는.
▲康明道=내가 남조선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89년 인민무력부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으로 있을 때다.당시 군부 고위층의 권력다툼으로 평남 북창군에 있는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됐다.거기에는 3만여명의 죄없는 사람들이 수용돼 비 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갱이 무너져 무리죽음을 하고 굶어죽고 구타당하는 현실을 목격,金正日에 대해 반감이 들게됐다.
두번째는 작년 11월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릉영륜전사업부」 부사장으로 중국에 수금하러 갔다가 한달 넘게 못돌아가자 金正日이 화가나 나를 체포하거나 총살하라고 지시했다.
-군부내 권력다툼을 자세히 얘기해달라.
▲康=북한 군부는 인민무력부장인 吳振宇와 吳克烈파로 나뉘어 있다.吳振宇가 87년 초대소에서 金正日과 술을 마시고 만취해 차를 몰고 돌아가다 가로수를 들이받아 크게 다쳤다.그때 吳克烈이 대행을 맡았는데 吳振宇가 다시 소생하지 못할 걸로 생각하고인민무력부나 총참모부를 완전히 다시 꾸몄다.1년만에 吳振宇가 나와보고 뿔이 났다.이걸 부추긴게 총정치국부국장 李奉遠이다.金正日에게 가서 같이 일 못하겠다고 말했으나 듣지 않자 金日成앞에서 울면서 호소했다.그래서 吳克烈 이 총참모장에서 해임됐다.
吳振宇는 인민무력부나 총참모부를 완전히 다시 개편했다.
1군단에서는 총정치국과 작전국에 많이 올라와 있었고,2군단에서는 총참모부에 많이 불려와 있었는데 1군단파,2군단파간 알력이 심했다.
-趙明哲씨의 귀순동기는.
▲趙明哲=내가 귀순한 동기는 金正日비서체제에 대한 불확신이다.내가 경제적으로나 그 어떤 압력을 받은 것은 아니다.그러나 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체제환경을 분석할 기회가많았다.나의 이런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에게 그 무엇인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줬으면 하고 결심했다.
내가 남산학교에 다닐 때 金平一이 같이 공부했다.金平一은 공부를 잘했고 개인적으로 사람도 많이 끈다.그러나 金平一과 식사를 같이 한 선생들이 모두 쫓겨났다.
-아버지 趙哲俊씨는 개방파였나.
▲趙=정무원 각료들은 솔직히 派가 없다.派라고 할 때는 사상감정으로 모여야 하는데 그런 그룹이 없다.그러나 모두가 개방할것을 명백히 원한다.
-吳振宇가 총정치국장을 겸임하고 있는가.
▲康=겸임하고 있다.군부내 권력다툼이 심해서 그렇다.총정치국과 총참모부는 갈등이 심하다.김창봉등이 무력부장을 할 때 金日成의 조카사위인 이용무가 총정치국장이었는데 갈등이 심했다.이용무를 제거한 뒤부터 두자리는 겸임하게 됐다.
-핵문제에 대한 군부의 생각은.
▲康=미국이나 남조선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카드로 쓰려는 게 아니다.金日成.金正日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핵이라생각하고 있다.
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많은데 이 때문에 인민생활이 찌들리고 있다.핵을 가져 군수공장을 민수용으로 바꾸자는 생각이다.
93년에 5개정도는 이미 완료했다.이걸 실어 나를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는데 93년까진 완전 생산을 못한 실험단계였다.94년에는 완전히 끝나 대대적인 생산에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핵을공개할 것이다.핵단지인 영변을 지키는 국가보위부 책임자를 국가보위부 조순백국장의 소개로 93년10월 만났다.결혼식문제로 평양에 왔는데 맥주.담배등은 우리밖에 생산할 수 없어 고려호텔에서 만난 것이다.그 사람 얘기가 금년,내년만 잘 넘기면 10개는 끝나고 10개가 되면 공개한다고 말했다.
-金正日체제가 얼마나 갈 것으로 보는가.
▲康=金正日체제는 74년부터 기반을 닦아와 탄탄하다.
문제는 두가지다.첫째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을 봤다.굶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양실조등 합병증으로 죽는다. 두번째는 경제가 완전히 파괴됐다.민간경제는 70%가 죽었다.청진에 화학섬유공장이 있는데 91년부터 완전히 멎었다.
현지에서는 석탄과 원료.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돌리느냐고 했다.
8천명의 직원들이 모두 도로.방어진지 공사등에 다 동원됐 다.
93년11월 김책제철소도 한달간 가동 중단했다.김책제철소는 북한 강재의 40%를 공급한다.용광로 3개중 2개가 멎었다.이문제가 해결 안되면 무너진다.
-94년을 잘보낸다는 것은 北-美정상회담등을 핑계로 시간끌기를 한다는 건가.
▲康=91년부터 날씨도 나쁘고,비료공급도 잘 안 되고 있다.
남쪽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을 할 때마다 북쪽에서는 엄청난 손실이다.노농적위대등에 동원돼 공장을 비우고 진지를 차지하고 기동훈련을 한다.농촌에 원유를 공급해야 하는데 인민군대 훈련에 쓰느라보장이 안 된다.모내기.강냉이 파종에도 전국적 지원이 안 된다.姜총리도 이대로 가다간 버티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사로청에 근무한 적이 있는 康선생은 사로청과 한총련의 연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康=西江大총장이 韓總聯에 대해 얘기하다 혼쭐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그 총장이 얘기한 것은 약과다.韓總聯을 장악하는 것은 통일전선부가 직접한다.
-金正日의 건강과 기호.친구등은.
▲康=金正日은 성격이 급하다.측근을 질책할 때 엄청나게 조폭한 욕을 한다.팩팩하고,저돌적이다.金日成우상화 작품을 많이 쓰고,가극.영화.혁명예술분야에 조예가 깊다.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잘친다고 한다.
눈물이 헤퍼 측근들과 별장에서 술을 마시면 어머니를 생각하며운다.敬姬가 먼저 울면 욕을 하고,자기도 운다고 한다.건강은 좋다.기쁨조는 78년께 통전사업부가 제일 먼저 내왔다.사회문화부의 이동호 1부부장이 관할하는 초대소에 金正日 과 같이 다녔다.문수초대소를 멋있게 만들어 金正日을 모셨는데 그 뒤로 기쁨조에 맛을 들였다.공개되지 않은 기쁨조도 있다.
-金正日의 부인은.
▲康=기본(본)처는 김영숙으로 그 사이에 딸만 둘 있었다.최근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55호 관저에 산다.둘째 처는 고영희라는 무용배우다.40세정도인데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었다. 성혜림이 있는데 조선영화촬영소 배우였다.성혜림은 전남편과의사이에 이미 아들이 둘 있는데 아들 하나가 나와 같이 외국어대를 다녔다.金正日은 그녀의 남편을 프랑스 유네스코대표부로 보내고 같이 살면서 김정남(23)을 낳았다.
-趙선생은 장인이 金正日서기실에서 15년간 보좌했다고 돼 있는데. ▲趙=金正日비서실장이다.당중앙위 서기부에 서기부장과 부부장이 있다.그런데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서기실이라 하고 조직부 부장,부부장이라고 한다.다른 당중앙위에서도 모른다.별개로 움직인다.거기에서 부부장급 실장이다.
-북쪽 지식인들은 金正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趙=金正日에 대한 불신이 많다.너무 즉흥적이고 신중히 생각하지 않는다.너무 평균적이고 일꾼을 대할 때 편견적일 때가 많다.金正日비서에 대해 신뢰감이 없다.
-결혼은.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 거라고 보는지.
▲康=나는 처음 기쁨조 여자와 90년1월에 결혼했다.그런데 내가 18호 관리소로 들어가자 거기서 살아나오는 사람이 없다는걸 알고 도망갔다.내가 나와보니 동생이 희영이와 같은 곳에서 일했다.희영이도 아이를 못낳는데다 姜총리가 좌천 돼 이혼당했다.처지도 비슷해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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