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홍총장 발언파문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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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녘에서는「큰 장사」를 지냈는데 남녘에서는 응당 있을법한 상반됨직한 두장의「祭 金日成 文」이 아직 없다.
전날엔 산 사람을 모시는 生祠堂을 세워 치적을 기렸는가 하면,죽지 않았는데 祭文을 지어 弔問하여 毁節을 나무랄 만큼「곧은말」에는 때를 기다리지 않았고 곳을 가리지 않았다.
15세기 대사헌 李則은 成宗이 외척의 속삭거림에 솔깃하여 정실인사를 할 조짐을 보이자,서슴없이 임금의 자격문제까지 들추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은 임금이 아니고,만약 백성을 위하여군왕을 골랐다면 聖人의 자질이 있었기 때문인데 전하께서는 어찌諫하는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까.』 왕자가 아니면서 睿宗의 친아들 濟安大君과 형 月山君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成宗이기에 남다른 치적을 올려야 할「빚」을 지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이렇듯「선비」가 하는 말에는 가리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16세기 掌令 姜鶴年은 仁祖가 백성을 고생시키자 光海主를 내몬 쿠데타가 잘 한 일이냐고 대들었다.
『전하께서는「보통슬기의 천품(中智)」밖에 안 되는 데도,올바르게 인도하는 신하가 없으니 자질구레 살피는 것을 밝다고 생각하시어 말단 사무에만 부지런하고,국사가 그릇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위태롭고 어지러운 줄울 알면서도 구하지 않았나이 까.』 仁祖가 反正을 일으킨 뒤 내란(李适의 난)과 외침(胡亂)이 잇따르고 임금은「어질 인」을 형식적으로 부르기만 했지 공신들의 입김때문에 그 進言이 막히고 있음을 따졌다.
이처럼 선비가 나라를 위해 임금께 드리는 말에는「위태로움」을무릅썼다.
太學生 任叔英이 과거 시험 對策文 답안지 끝에다 당시 꺼리는時事를 極論했음에도 우의정 沈喜壽가 우겨서 끄트머리에 합격시켰는데,이를 뒤늦게 안 광해주가 진노했다.
『應策文에 옛사람도 더러「위험한 말(危言)」을 한 사람이 없잖았지만,출제한 내용에 벗어나지는 않았는데 임숙영의 글을 보니글제 밖에 패악한 말을 방자하게 썼다.내 태학생의 임금 노릇하기 괴롭지 않겠느냐.』及第를 걸고서라도 선비는 할말을 남겨두지않았다. 承政院과 三司가 여러날을 두고 罷榜은 부당하다고 상소하고,영의정 李德馨이 제청하여 紅牌를 되돌려 주었는데,임금은 비망기를 내려 우려했다.
『시험장에서 감히 제목 이외의 글을 지어 못할 짓이 없이 욕을 한 것을 뽑아주면,만약 부박한 무리들이 반드시 임금 헐뜯는글을 미리 지어 사관의 눈을 현혹시킬 터이니,장차 그 폐단을 어찌하겠는가.』 어떤「말길(言路)」이라도 막지 않으려 애썼으며,자칫 언로가 막힐까봐 비밀스럽게 아뢰는 상소「奉事」는 내용이승정원(비서실)에 미리 알려지면 혹시 상달이 지체되거나,훼방을받을까 염려하여 밀봉을 꼭 어전에서 뜯게 했다.
이렇게「말길」이 좁아질까봐 멀리 생각하면서도,누구짓인가를 나타내기를 꺼리는 匿名書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고 불태워버리게 하여 터무니없이 모함당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상소라는 상하 좌우에 트인 언로가 있음에도 言官을 따로 두어 할말을 도맡아 다 하게 했으며,간하는 말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함부로 벌을 주지않았다.그「말의 출처」,곧 言根을 캐지 않는 것은 임금의 도량으로 여겼다.「언근」을 너무 캐면「언로」가 막히고 조정의「귀」와「눈」이 어두워져 결국 나라가 망 하게 된다고 여겼다.
최근 어느 대학 총장이「危言」을 무릅썼는데 한쪽에서는『잘했다』고 손뼉쳤고 다른 쪽에서는「언근」을 구체적으로 대지 않는다고윽박질렀다.「손뼉」쪽은 힘안들이고 이익만 챙기는「無賃乘車」한다는 꾸지람을 면할 수 없고,「윽박질」쪽은 들어갈 까 나갈까 기회만 살피는「首鼠兩端」한다는 나무람을 받기 십상이다.
옛선비는 미봉책을 미워했으니,是是非非를 가릴 적에 옳으면 옳고 그르면 글렀지 다 옳고 다 그르다는 兩是兩非론에 끼는 것을같잖게 여겼다.이는 史筆이라는「역사의 거울」을 앞에 놓고,「바른 말의 저울대」위에 있으니 잘잘못이 훤해지는 줄 알기 때문이다.한시대가 지나면 그 전의 인물을「저울질」하는「역사의 붓」이있었으니,高麗史를 보면 수많은 인물을 列傳에서 다루면서 崔忠獻이 무단으로 권세를 오로지하여 아들 손자로 물려준 것을「反逆」으로 분류했다.다른 나라의 예와는 사뭇 달랐다.
正史를 닦는 것은 사가의 몫이지만 우선 한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포폄의 도마에 오른 인물이면 임시평가를 통해 사람 살아가는 잣대로 삼게해야 마땅하다.진정 시비를 가리고 용기있게떠받들거나 受罪하는 떳떳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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