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바둑산책>한국바둑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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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일본기사들이 대단히 곤혹스럽다.도쿠가와 (德川)幕府시대로부터 4백년 전통의 프로기사 제도를 자랑하는 그들이 불과 30년 역사의 한국프로바둑에 무참히 셧아웃당함으로써 바둑팬들의 질타가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프로바둑이 세계4대기전을 석권할때만 해도『우리와 자주 대국하더니 한국바둑이 크게 향상되었다』며 애써 태연하던 일본 프로기사들.한번이야 어쩌다 그럴수 있다지만 2년 연속「싹쓸이」를 허용하고 보니 더 이상 태연할 수만은 없 는데다 팬들의 성화에 內憂外患의 괴로운 처지가 된 것.
『참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라는 어느 일본기사의 한탄이 실감난다.수년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던 일본 언론매체들이 자주 한국바둑을 특집으로 다루는가 하면 92년부터 曺薰鉉9단등을 초빙해 NHK-TV에서 한국기사의 우 승보를 해설케 할 정도가 됐다.
철저하게 한수 배우겠다는 자세라 할까.지난해에는 金寅9단이 다녀왔고 올해에는 曺9단이 원정해설했다.
최근 일본프로기사들 사이에는 한글공부와 함께 한국기원이 발행하는『월간바둑』과『바둑연감』을 정기구독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도 그중 한사람.부인 레이코(禮子)6단을 시켜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지난번「진로배 세계최강전」北京대국때 중국기원의 서가에 한국바둑책이 즐비하고 모두들 한국기보를 연구하는 것을 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이 그 연유를 물었다가『한국바둑이 세계 최강인 이상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답변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는걸 들은 적이 있다.
중국 기사들에 이어 일본 기사들까지 한국바둑 연구에 열을 올리는 것을 대하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끼다 못해 만감이 교차한다.
그 영향으로 한국기원 발행『바둑연감』5백권이 1차로 일본에 수출됐다.『1년에 5천권은 쉽게 팔 자신이 있다』는 일본 서적상의 얘기다.
한국기원으로서는 특별고객이 생긴 셈이다.올해 발행분부터 기전과 기사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도 순전히 일본및 중국고객을위한 배려라고.
지난해 5월.싱가포르에서의 應昌期盃 결승때 루이네웨이(芮乃偉)9단이 쪽지에『곡(꼭) 이겨요』라고 써가지고 徐奉洙9단을 감격시켰던 것도 따지고 보면 기전과 대국자 이름까지 몽땅 한글투성이인 한국 바둑연감에 답답해 한 나머지「목마른 사람 샘파기」식으로 한글 공부를 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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