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트렌드>독서계 30代 新세대 작가 장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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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30대 신세대 작가들이 우리 독서계를 장악,문단의 세대교체까지 예고하고 있다.기성작가들의 주요 주제였던 이데올로기문제가 동서냉전체제의 붕괴로 독자들의 관심권을 벗어난데다 기성작가들이현재 주요 독자층인 신세대들의 감각과 그들이 갈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독서계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또 과거 문학서적을 내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했던 등단제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도 기성작가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한 원인으로 꼽힌다.실제로 정보통신능력으로 무장한 신세대들이 PC통신에 작품을 먼저 연재했다가 가능성이 엿보이면 책을 내 히트를 하는 사례들도 많다.
물론 독자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문학적으로 훌륭한 것은 아니다.오히려 「문학성이 떨어지는 책이라야 히트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독서계가 파행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작품성이 아무리 훌륭해 도 독자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면 그 작품은 이미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작가 혼자만을 위한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서울시내 주요서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문학작품을 보면 30대 신세대들의 독서계 「싹쓸이」현상을 금방 파악할 수있다.최근 교보문고.종로서적.영풍문고의 판매부수를 합한 종합리스트에 오른 문학작품은 국.내외 합쳐 모두 6작 품.이중 로빈쿡의『바이러스』(열림원),알란 폴섬의『모레 1』(서적포),엘리자베스 토머스의『세상의 모든딸들』(홍익출판사)등 외국작품을 제외하면 국내저작물은 모조리 30대 신세대들의 작품이다.종합 2위에 오른『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해냄출판사)의 김진명씨가37세이고 6위를 기록하고 있는 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창작과 비평사)의 저자 최영미는 33세다.
물리학자 이휘소씨를 소재로 한『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때마침 터진 북한 핵문제와 맞물려 지난해 8월 출간된 이래 줄곧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면서 3백만부나 팔렸으며『서른,잔치는 끝났다』역시 시집으로는 드물게 발간 4개월만에 30만부 판매돌파를 앞두고 있다.
현재 우리 독서계와 문단의 지각변동을 예고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는 『퇴마록』(들녘).초자연적인 惡靈들과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다소 공허한 내용인 이 소설의 저자 이우혁씨는29세.이 작품은 PC통신이란 문명의 이기가 아 니었다면 빛을보지못했을 소설이다.평소 PC통신을 눈여겨 관찰하던 도서출판 들녘의 이정원사장이 하이텔에 발표되던 이우혁씨의 작품이 소재나문체에서 참신하다고 판단,출판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이 작품들을 바짝 뒤쫓고 있는 소설『적도』 의 작가 김제철 역시 39세다.기성작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던 최인훈씨의『화두』마저도 다소「봐주기식」의 인상이 짙은 언론의 각광 속에 지난주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으나 출간 3개월 남짓 만에 독자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
불과 5년전으로 올라가보면 우리 독서계는 기성작가들의 손아귀에 있었고 독서계의 흐름은 곧바로 문단의 흐름과 직결됨을 알 수 있다.지난 89년 한햇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은 기성작가 이문열씨의『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윤정모의『고삐』,정현웅의『마루타』등 이었다.특히 이문열씨는「이문열신드롬」이란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발표되는 작품마다 대히트를 기록하며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5년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독서계를 주도하던 기성작가들이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출판계 전문가들은 과거 기성작가들의 창작활동에 주요 밑천이 되었던 체험이 바닥을 드러냈는데도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을 축적한다든지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 이지 않은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3백만부 팔린책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지만결과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예컨대 최근 세종대 국문학과교수로 변신해 화제가 되었던 이문열씨의 경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고발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최근 몇몇 작품 에서 현실문제를 주제로 삼았으나 신세대들의 관심을 끌기는 커녕 기성세대들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낳고있다. 이런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곳이 바로 출판계.신세대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니 문학성이 떨어지고 기성 작가의 작품을 내자니 상업성이 떨어져 아예 출판도서의 분야를 바꾸어버린출판사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이텔 통해 문단데뷔 문예출판사의 田炳晳사장은 이같은 현상과 관련,『70,80년대 이름을 날렸던 중진작가들이 그래도신세대들에게 인생이나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층인데 책이 호응을 받지 못하니 창작의욕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작품을 제대로쓰지도 못하 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문단에서는 30대 작가들의 작품을 문학성이 결여됐다고해서 아예 거론조차 않으려고 들지만 독자들의 판단에는 이미 우리 문단이 신세대작가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발표된 趙廷來씨의 『아리랑』,劉賢鍾씨의『제국의 별』,金源斗씨의『어느 개의 인간적인 추억』등 50대이상중진작가들의 작품이 우리 독자들에게 권토중래해 올수 있을것인지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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