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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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6) 『입이라고 다 있지만 어디 입이라고 같은 입이던가.흉년에 밥 빌어먹으라고 뚫어놓은 입도 있는 거고,일년내 목구멍에 때벗길 날 있을까 말까한 입도 있는 거고,고대광실 높은 데서 쌀이 희냐 검으냐 하는입도 있는 거고.』 『내가 말하는 입은 그 입이 아닐세.몸조심은 입조심부터라는 걸 알아야지.』 『그나저나 왜들 이렇게 뒤숭숭한 거여.』 조가가 윤씨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뒤숭숭하기는.』 『나도 눈치 하나로 사는 사람이여.그러지들말고 무슨 일인지 귀띔 좀 하지 그래.해도 함께 해야지.』 어두컴컴한 터널 안으로 들어서며 윤씨가 말했다.
『먹지 않는 종이 있으면 나라도 부릴 것이며…투기 없는 예펜네 있으면 열이라도 얻겠다.』 『그건 또 무슨 소리?』 『그저옛님네 하신 말씀이 있지 않던가.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구.
』 『내 말이 그말이여.무슨 굿인지나 알어야 할 거 아니던가.
밤새 울다가 누구 초상이냐고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던가 그말이지.』 『글 잘하는 자식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자식 낳으라더니 자네가 그짝이네.』 『내가 뭐 어때서.』 『성명 삼자 써놓아도 제 이름 보면서 이게 누군가하는 사람이,말이야 조선팔도에자네만하기가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그거 무슨 그렇게 섭한말을 하나.』 『뭔가 하면!』 송씨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만리타향 조선놈끼리 나와 있으면 싸래기 반톨이라도 쪼개주면서 위할 줄을 알어야지.헌데 사사건건 고자질로 세월을 보내는 놈이 있다면,그놈을 그냥 둘 수야 없는 법이지.』 『이 사람아,목소리 낮춰.』 질색을 하며 심씨가 말했다.
『들으라고 하는 소린데,커야 들리지.』 『어허,점점.』 『하루 이틀 안에 무슨 사단을 내도 낼것이니,두고 보세나.』 『두고 보자는 놈 무섭지 않더라.헌데,누굴 점찍고하는 소린진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건 아니지 않나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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