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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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3) 『너 이말 아나?』 『흉년에 싸래기 반톨만 처먹고 살았나….』 이놈이 언제봤다고 꼭 나한테 반말을 하네.꾸욱 꾸욱 마음을 다잡으며 강씨는 외면을 한다.
『너 지금 뭐라고 했나?』 『귓구녕까지 처먹었나.』 『어허 사람이 양반되기는 글렀구먼.』 『한반이든 양반이든 그런 건 너하거라.』 『말 다 했나?』 『들어 보거라.내가 다 했나? 아직 멀었구먼.』 가래를 돋우며 강씨가 말했다.
『이야기는 이렇다.사람이 말을 놓으려면 그앞에 부치고 지지고뭔가가 있어야지,사람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좋은 사이에 하는거지,불쑥 내밀게 따로 있지,뭐라고? 너 이 말 아나?』 『미안허구먼.』 『누가?』 『내가 미안하다구.』 『날아가는 갈매기도 다리 오무리고 나는 거,너 몰랐지? 그랬을 거다.』 뒤쪽에섰던 심씨가 혼자 중얼거렸다.
『잘난 놈 다 뒈진 줄 알았더니 아직 남어있었네.』 『나 보고 하는 소리여?』 『귀 있는 놈이 듣겠지.』 저벅저벅 발소리를 맞추며 방파제 밑을 그들은 걸었다.노무계의 이시하라가 철컥철컥 가죽 회초리로 제 각반을 때리며 서있다.
『저 아새끼는,제 에미 탯줄 끊으면서부터 사람 치려고 나왔나?』 『들을라.』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그럼.』 『너는 그럼니 어무니헌테,나 매맞겠소 하며 나왔냐? 맞는 장사는 없다.옆사람 생각도 좀 해라.너 보는 거 얼마나 힘든지 아냐?』 『염할 놈.』 『뭐 어째?』 『야 이놈아.이래 사나 저래 사나,부뚜막에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기는 마찬가지다.해 떨어지면 컴컴한 거고,나 먹자고 농사 짓는 거 아니다.』 조장이랍시고 태봉이가 한마디 했다.
『그쪽에서들 좀 조용히 하시지.』 『잘난 몸 아직도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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