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로 「통일의 꿈」 가꿔갈 때(김일성사후의 한반도:8·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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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 체제안정 때까지 자극은 금물/군비경쟁 중지,교류·협력 선도를
김일성 사망으로 한반도는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한민족에게 엄청난 불행과 시련을 안겨준 장본인의 죽음은 반세기 민족분단 역사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최고의 주제는 통일이 될 것이다.분단원인중 하나가 김일성이란 존재였고,북한체제는 그와 일체화되어 있었던만큼 김의 죽음은 곧 통일을 가로막아온 큰 걸림돌의 제거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사라졌다고 해서 평화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다.지금 북한권력을 발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김정일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불확실하고 그의 체제도 앞날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발전시겨온 김정일은 당분간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우선은 체제안정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남한에 대한 못된 버릇을 아직까지는 고치지 않고 있다.김일성 조문단 파견을 환영한다는등 이른바 통일전선전략을 계속 구사하고 있고 잠시 삼가던 우리측에 대한 비방도 시작했다.이는 그만큼 통일에 이르는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또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통일 꿈나무」를 가꿔 나가야 한다.북한은 지금 한국과의 체제경쟁에서는 물론 국제정치적 영향력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때문에 북한은 능동적으로 통일작업을 주도 하거나 통일문제에 적극적으로 매달릴 처지가 못된다.
결국 우리가 슬기와 끈기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즉,통일역량을 키우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가.
박재규 경남대총장(정치학)은 우선 북한체제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북한이 내부 역학관계에 따라 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자체 정비를 거쳐 안정기를 맞이할 때까지 우리 정부는 사태를 신중히 관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총장은 또 『 김일성사망을 흡수통일의 호기로 간주하는 사고를 경계해야 하며 북한체제의 급속한 붕괴를 촉진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학준 단국대이사장도 동의한다.북한을 자극해 자칫 돌발적인 사태발생 소지를 만드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총장과 김이사장은 이와 함께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 남북한이 합의한 정상회담 개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한다.김정일체제를 대등한 대화·협상의 파트너로 보아야 하며 남북정상회담 실현으로 평화적인 남북관계 제도화를 모색하는게 좋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지금 김일성의 권력을 무난히 승계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관측되나 아버지에 비하면 그의 권력기반은 매우 취약하다.김일성이 과시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도 없는데다 「빵」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그는 김일성 급사로 인한 위기를 어느 정도 수습한 뒤에는 살방도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그가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개방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남한·미국과의 대화에도 신경쓸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 견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통일의 첫걸음은 남북간 신뢰 회복이다.우리가 화룡선처럼 넓고도 큰 도량을 베푼다면 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우리에 대한 신뢰가 싹틀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우리는 이 싹을 잘 길러야 한다.남북은 이런 기반 위에서만 민족의 아픔을 치유할수 있는 길을 찾을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남북한이 이미 체결한 남북 기본합의서를 잘 이행하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다.사람·물자·정보·문화의 교류와 협력을 기어코 관철시킬수 있는 남북상호간의 접점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군비경쟁을 중지하고 각각의 체제안정을 보장하는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또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이 준수돼야 한다.
남북 상호간에 신뢰가 형성됐다 하더라도 이같은 과제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이념과 문화차이가 현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북의 인내며 민족애다.한민족의 슬기로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야 한다.지금 우리는 민족역량을 만방에 과시해야할 대전환의 시대 앞에 서있는 것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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