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 전망/이병용 민족통일연구원장(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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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체제유지 점진적 개혁시도/중과 공조 미·일 접근할듯
분단 반세기,상처 깊었던 우리 민족사의 일막은 이제 끝났다.
지난 9일 김일성주석의 돌연한 사망소식은 7천만 겨레는 물론세계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소식임에 틀림없다.
특히 오는 25일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충격과 파장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김주석의 사망으로 지금 내외의 관심은 앞으로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며,이에 따라 금후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에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권력구조 상층부내에서의 권력투쟁과 이에 따른 어떤 돌발적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으나 오늘날 북한사회는 오랜 세월 김일성의 신정체제하에서 이미 80년대부터 확고한 후계체제를 구축해온 김정일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는 현재로선 확고한 것같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이제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냉전시대와 비교해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북한에서 김일성의 자리를승계한 김정일이 앞으로 어떻게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데,이러한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이 당면한 현실적 어려움이 무엇인가 하는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외부 세계의 급변으로 개방과 개혁의 압력을 받으면서 동시에 체제유지를 위한 내부단속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적 갈등 속에 놓여있다.따라서 북한의 지배체제는 이같은 외압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혁명전통과 개혁전통,경제발전의 수준,서방세계와의 협력관계,사회적 다원화등 여러 변수에 따라 변화해왔다.
중국과 같은 경제의 한정된 개방,소련과 같은 위로부터의 급진적 개혁,루마니아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체제붕괴등의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껏 주체사상을 유일의 지도이념으로 삼고 수령·당·대중이 삼위일체가 된 국가체제와 자급자족의 폐쇄경제체제로 오늘날 북한을 하나의 병영사회로 만들어 놓고 소위「우리식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하면서,또한 남북한 분단의 특수상황을 이용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체제를 고취시키면서 그들 체제를 관리해 왔다.다른 사회주의 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같은 점들은 이제껏 북한의 체제관리에는 강점이 되어 왔으나 그들 체제의 개혁과 개방엔 역기능을 해왔다.그러나이러한 변화의 저해요인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촉진요인들이 현재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국제환경과 핵투명성을 요구하는 국제공조체제에 대응하는 문제,파탄 직전에 놓여있는 경제위기를 여하히 대처해 주민들의 최소한의 생활욕구를 충족시켜 주느냐는 문제등은 안팎으로 당면한 어려운 문제들이다.
오늘날 북한이 당면한,그들 교조주의체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이같은 문제들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남조선해방이라는 혁명논리에 연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북한의 변화는 이같은 혁명의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그 해방은 북한이 교조적 주체사상과 유일지도 체제,폐쇄적인 대외정책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근본적 변화를 김일성의 사망으로 당장 북한으로부터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제껏 북한은 외부의 충격이나 압력을 극도로 제한해수용하는데 국한함으로써 그들 주체형 사회주의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그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폭넓은 합의가 형성되어 있으나 문제는 단기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점과 있다면 그 시기가 언제쯤 될 것인가,그리고 변화의 촉진요인과 억제요인이 복합작용하는 가운데 장차 북한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가 관심사다.
우선 체제개혁에 있어서는 현재 북한 내부에서도 실용주의적 사고가 싹트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당의 획일적 통제하에서 주체사상을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부의 출현이 단시일내에 조직적으로 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따라서 현체제를 유지하면서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이 시도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국제적 고립과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과의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일·대미 접근에 전력을 경주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그들 대외정책과 표리관계에 있는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나 기본정책이 변하지 않는한 생산적인 결과를 단기적으로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남북관계가 실제로 통일에 좀 더 접근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지금 개혁의 가능성 여부를 탐색하는 시험적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약력
▲국토통일원 차관 ▲안기부장 1특보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90년10월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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