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대학은 교육연구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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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속사정도 모르는 친구들은『이제 방학이니 강의도 없고 출근할 필요도 없어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일에 밀려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소설,보고 싶었던 영화나 전시회도 여유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친구말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본다.
요즘 서울大 물리학과와 같은 곳의 교수라는 직업이 얼마나 바쁜 노동(?)을 요구하는지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를 것이다.매일아침 컴퓨터를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 동료들의 전갈을 읽고 꼭 대답해야 할 것을 처리하면 거의 한두시간이 흘러 간다.
지구상의 그 많은 물리학자들이 저마다 논문을 써 학술지에 발표한다.그중 많은 사람들은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에 프리프린트(Pre-Print)라는 것을 만들어 자기와 유사한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다.학술잡지에 논문이 실 리려면 편집자가 지정한 검토자(Refree)의 검증을 무난히 통과한다 해도 최소한 두달은 걸린다.그동안 혹시 다른 사람이 같은 내용을발표하거나 어떤 이유든 학술잡지에 실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에 프리프린트는 인기있는 자기 선 전 수단인 동시에 일종의비공식 특허신청과 비슷하다.밀려드는 프리프린트도 대충 읽어야 하고 매주 발간되는 물리 속보 개요지같은 주간 학술잡지에도 눈을 돌려야 하기에 방학이란 말 뿐이지 매일 출근하는 것은 학기중과 별다를 바 없다.
흔히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표현하면서 대학교수란 낡은 강의 노트나 되풀이해 써먹고 몇십년 묵은 이론을 再湯해 되풀이하는 직업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혹 그런 대학,그런 학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대학은 나날이 새 로운 지식을개발해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국제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대학도 이젠 시장경쟁원리를 따르는 교육연구企業이어야 한다.이렇게 여건은 변했는데도 교육부마저 대학을 보는 시각은 舊態依然하다.
국제경쟁력은 과학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구호를 외치는 정부와 교육부가 과학 교육을 보는 시각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정부수립후 단 한번도 대학의 연구 機資材를 內資에 의한 정규 교육부 예산으로 구입한 적이 없고 세계은행 차 관에만 의존해왔다.이렇게 부정기적인 기자재 도입으로는 연구실적이 不實하게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치 가난한 서민이 그날 그날 호구지책에밀려 빚만 얻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얼마전부터 연구중심대학을만든다고 떠들썩하면서도 그나마 국 내에서 가장 여건이 좋다는 서울大 자연과학대학 조차도 그렇게 흔한 연구소 하나 없다.이름은 거창한「자연과학종합연구소」가 있지만 專任연구원이나 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간판만 걸고 연구비를 관리하는 窓口 역할을 하는 원시적 상태에 불과하다.
대형 연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숨쉬고 대형 器機를 만져보며실제로 실험을 하고 자라나는 외국의 일류 연구중심대학 학생을 생각할 때 서울大 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서울大는『천재를 뽑아 바보로 만들어 졸업시킨다』는 말이 설득력을 지닐 정도다.세계에서 15위 교역국이라는 韓國인데,그 나라에서가장 좋다는 서울大가 어떤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7백23등이라니(개인적으로는 그 보고서를 믿지 않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어도한참 잘못되었다.
그 뿐인가.자라나는 우리 아들 딸들이 그 7백23등짜리 서울大에 들어가기 위해 무거운 책가방에 도시락 두개를 채워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서서 밤별을 보며 돌아오는 入試공부란 중노동에시달리고 있다.우리 어른들에게 그 싫어하는 공부 를 매일 18시간씩 하라고 강요했다면 철도와 지하철 파업이 아니라 혁명이라도 났을 것이다.
***天才 뽑아서 바보로 교육改革은 이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人道的 문제다.언제까지 우리 자녀들이 꿈많은 어린시절「제도와 사회」의 강요를 받아「노동법」을 어기는 중노동의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가.「교육대통령」이 되겠다던 金泳三대통령이 교육개혁위원회와 교육 부,그리고 衆智를 모아 미봉책이 아니라 교육 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도록 살펴주면 길은 있으리라 믿는다.귀여운우리 아들 딸들이 7백23등짜리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많은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제대로 된 세계적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하지 않겠는가.이것조차 못한다면 우리 어른들은 무슨 낯으로 어린 자녀들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筆者 약력▲59세▲서울大 물리학과▲美컬럼비아大 이학박사▲일리노이大 연구원▲서울大 물리학과 교수(現)▲저서『겨우 존재하는것들』『빛은 있어야 한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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