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북방송청취 풀어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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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린환공보처장관은 13일 언론사의 북한방송청취를 허용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그의 견해는 『시기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곤란』하며,『언론사가 기사와 선전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정부는 언제라도 북한과 방송교류를 하겠다』는 말을 했다.다른 논리는 다 제쳐놓고라도 이 말만으로도 정부의 논리가 일관성과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만약 오장관의 판단처럼 아직 시기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언론 사가 기사와 선전을 구분못할 정도로「바보」인 것이 분명하다면 설사 북한이 남한방송의 청취를 허용해도 북한방송의 자유로운 청취와 보도를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지난 9일 김일성사망소식을 KBS는 아마추어무선의 도움을 받아 제일 먼저 국내에 알렸다.같은 방송사라도 MBC나 SBS는 관례를 충실히 따라 일본방송을 인용하다가 속보경쟁에서 뒤졌다.그렇다면 어느 방송사의 자세가 옳았던 것인가.KBS는 처벌받아야 하는가.
수십년동안 언론사들은 아무리 국민이 즉시 알아야할 북한의 중대방송 내용이라도 그것을 보도하려면「동경발」의 외신을 인용해야하는 남부끄러운 형식을 강요당해 왔다.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던 것이다.「내외통신」등 당국을 통해 허락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그런 경로를 밟아서는 속보를 할 수 없고,그나마 대부분 「해석되고 여과」된 것이기 마련이어서 그 활용성이 떨어진다.
정부는 이미 통일원 산하 북한자료센터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북한 신문·잡지를 공개하고 있다.그런 판에 유독 방송에 대해서는 언론사에까지 청취·보도를 신고케 하고 있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정부당국에서 밝히고 있듯이 물론 청취·보도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대법원도 이미「특별한 사정없이 북한방송을 청취했다는 사실만으로 찬양·고무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여러차례 낸바도 있다.그러면 언론사가 판단해 북한방송을 청취·보도할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당국의 정직된 견해가 언론기관에 대한 족쇄가 되고 있다.지난 1월과 2월에 이 문제가 거론됐을 때 안기부 관계자는 『북한방송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바 있으며,대검공안부 고위당국자도 『보도행위 자체는 금지할 수 없지만 보도내용이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에 해당한다면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언론기관의 자유로운 청취와 사실보도를 위해선 당국의 이런 견해가 우선 완화돼야 한다.언론기관이나 학술단체까지 선전과 사실을 구별못한다고 보는 것은 모욕이며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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