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인신공격(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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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 의회에서는 상대방에게 반드시 존칭을 써야 한다.「명예로운 ○○의원께서」「학식있는 △△의원」식으로 상대를 높이는 형용사를 꼭 붙인다.거짓말쟁이 따위의 비난은 절대로 할 수 없다.꼭『당신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렇 게 직설적으로 할 수 없고「정직성의 부족함」이 있다고 돌려 말한다.
처칠은 「용어상 부정확함이 있다」는 말을 썼다.
이런 영국 의회에서「당신은 심장이 두꺼우니까」라든가,「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사람」,또는「마빡」이라는 말이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즉각 의장의 주의를 받고 취소·사과하지 않는다면 징계처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다르다.이런 말이 예사로 쓰인다.13일 국회예결위에서 민자당의 박희부의원은 김숙희교육부장관에게『찔찔 짜는 장관도 있었지만 김장관은 심장이 두꺼운 사람 아니냐』고 했다는 것이다.김장관이『내 심장이 두꺼운지 어떻게 아느냐.인신공격을 삼가라』고 반격하자 그는『여성장관이라「마빡」이라는 표현을 못써 그렇지 김장관 이마를 바늘로 찔러도 피는 커녕 물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로 떠들었다고 한다.그러면서 이 의원은『의원이 면책특권을 갖고 발언하는데 웬 대꾸냐』고 했다던가.
김장관과 이 국회의원간의 설전은 마침 이날 저녁 TV뉴스에서 생생히 보도되어 많은 국민들이 의원의 말씀솜씨나 수준을 잘 알 수 있게 됐다.
우리 국회법에도 의원은 모욕등의 발언을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조항도 두고 있다.이를 위반하면 징계처분을 받게 돼 있는데,그러나 이날 이때까지 국회에서는 수많은 저질 발언·모욕 발언과 품위를 지키지 못한 상 말·막말등이 쏟아져 나와도 어느 의원도 그것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아마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의원들의 동료애,팔이 안으로 굽는 서로간의 우정과 의리(?)가 놀랍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따위 막말·저질발언을 방치해두면 결국 의원 전체가 다 한패가 되고 도매값으로 저질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의원 면책특권을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는 의원이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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